[살맛나는 세상]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20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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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나는 세상]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퇴직 후 13년간 병원 안내 봉사를 해 온 김영복 씨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 지기입니다.


종합병원에서 진료 한 번 받으려면 절차가 꽤나 복잡한데요. 이런 과정이 전산화·자동화되면서 편해진 듯싶지만 무인기기가 익숙지 않은 어르신들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진료 전후 등록, 수납기가 다르고 수납기도 카드 결제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 기껏 줄을 서 있다가 낭패를 보기도 하는데요. 이럴 때 노란 조끼의 스마일맨, 김영복(73) 씨가 나타납니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대구 보훈병원의 베테랑 안내 봉사자 김영복 씨는 친절한 미소로 환자에게 다가가 불편한 점을 살핍니다. “병원에 처음 왔는데 어디부터 들러야 하나요?” “수면제 처방받으려면 무슨 과로 갑니까?” “카드 결제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등의 다양한 질문들이 많지만 워낙 오랜 봉사 경력 덕분에 단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알려주시는데요. 힘들어하는 기기 사용법을 알려주고, 질병과 증상 관련 진료과를 안내하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와는 원하는 곳까지 동행할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까지 헤아려드리는 김영복씨의  하루를 엿보겠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나이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철원에서 군 복무를 하던 김영복 씨는 비무장지대 경계초소에서 매설 지뢰를 밟아 오른쪽 발을 잃었습니다. 피를 많이 흘려 병원에서 18일 동안 수혈을 받았지만 착오로 인해 O형인 김영복 씨에게 계속 A형 혈액이 흘러들어 갔는데요. 사람들은 살기 힘들 거라고 했지만 그는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또한, 간신히 45일 만에 다리 수술을  하게 됐지만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는 쇼크가 와서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며,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면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있을 땐 저 같은 상이군인만 보다 사회에 나와 보니 목발 짚고 다니는 사람은 저 하나뿐이더라고요. 그때부터 오만 생각이 다 드는 거예요. 집에도 연락하지 않고 죽을까도 싶었어요.” 

어떻게 죽을지 구체적으로 찾다가 문득 자신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데요. 그럴 바엔 살아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으며, 고향인 울릉도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려 했지만 모내고 밭 갈고, 앉았다 일어났다, 무거운 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의족을 한 다리로 녹록치 않아 결국 보훈처를 통해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총무과에 취직을 하게 되어 처음이자 마지막 일터가 되어 33년을 성실히 근무하셨다고 합니다.




다시 베푸는 삶

김영복 씨는 5급 국가유공자로 보훈병원을 찾는 국가유공자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데요. 친분 있는 환자들도 많아 봉사가 끝나면 병실에 올라가 말벗이 되어주거나 상태를 살펴보기도 하며, 국가보훈제도에 대해 궁금해하는 환자들에겐 상담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동안은 먹고살기 위해 일했으니까, 남은 생은 만 분의 일이라도 국가에 보답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봉사를 하는 거예요.” 

조국을 지키다 장애를 갖게 됐지만 국가의 도움으로 반듯하게 살아왔으니 은혜를 갚으며 살겠다는 뜻인데요. 동산병원에서 1,400시간, 대구보훈병원에서 3,900여 시간을 봉사해 오면서 그는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지각하는 법이 없습니다. 봉사를 위해 저녁 여덟 시 전에는 잠자리에 들고 오전 다섯 시 전에는 일어나 준비를 하며, 버스와 지하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한 시간 넘게 오는 거리지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는 마음으로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계십니다.

 “휠체어를 타고 왔다가 수술 후 걸어 나가는 환자를 볼 때, 고향 사람이 입원했다 건강하게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 기분이 좋아요.” 

본인도 신경외과, 내과, 피부과를 다니며 협착증, 전립선, 혈압, 피부 관련 약을 처방받는 환자이기도 하지만, 동병상련이라고 국가유공자들이 많이 오는 병원에서 봉사하는 것이 보람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보훈 가족을 위해 기쁘게 봉사할 거라는 김영복 씨의 마지막 이야기가 메아리처럼 남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는 봉사하러 오고, 병들어 아파도 치료하러 올 곳이니 나는 평생 보훈병원에서 살다가 갈 겁니다. 하하.”




“휴대전화 빌리는 일은 다반사고요, 퇴원환자를 부축해  택시를 잡아드리거나,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차비를 빌려 가는 분도 있었어요. 기대하지 않고 드렸는데  다음 병원 오는 길에 잊지 않고 돌려주시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더 감사했어요.” 

도와주고도 고마워하고 즐거워하는 김영복 씨, 33년간 종합병원으로 출퇴근을 했으면서 또 13년간 주 5일을 굳이 병원에 와서 봉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 해당 기사는 코오롱 사외보 〈살맛나는 세상〉 vol.119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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