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점을 넘다
스페이스K_대구 <크리티컬 포인트(Critical Point)> 展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지기입니다.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_대구에서 영남지역 신진작가 기획전 <크리티컬 포인트(Critical Point)>를 개최하였습니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하는 이번 전시에는 문지영(부산대학교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졸업), 신준민(영남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 졸업), 안효찬(경북대학교 미술학과 조소전공 졸업) 등 세 명의 작가가 참여합니다.
한 단계 나은 예술 세계를 향해
스페이스K_대구에서 2월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의 제목 <크리티컬 포인트>는 영어로 임계점(臨界點)을 이르는 화학 용어로, 물질의 상태가 바뀔 때의 온도나 압력을 뜻합니다. 바로 고체가 액체로 혹은 액체가 기체로 변화하는 바로 그 순간처럼, 이들 세 작가들은 저마다의 예술 세계를 향해 한 단계 나아가는 중요한 기로에 있습니다. 기성에 안주하지 않는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회화, 조각, 영상 등 각기 다른 매체로 저마다의 독특한 시각 언어를 구사합니다.
보통에 대한 역설
작가 문지영은 시각 장애와 지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동생과 함께 성장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게 된 어머니까지 부양하게 되면서, 그들의 존재감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의 모습을 그린 그의 작품 <가장 보통의 존재>는 보통의 평범한 존재로 살아갈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역설적 표현입니다. 가족이라는 관계의 틀을 내려놓고 바라본 동생과 어머니는 자신의 힘으로는 스스로를 온전히 보살필 수 없는 젊은 여성과 병든 노인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의 주인공일 수 없는 약자들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았습니다. 화장을 하거나 낮잠을 자고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화면 앞에 관람객들은 불편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보통 사람, 보통 취향, 보통 연애와 같은 표현에서 보통이라는 수사는 남다를 것 없는 평범함을 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이 정상이라는 기준이나 표준으로 세워질 때 폭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통의 존재로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담담히 말하고 있습니다.
어디에나 있으며 어디에도 없는 풍경
작가 신준민은 도시의 일상 풍경을 배경으로 개인의 정서적 경험과 기억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대구의 달성공원이나 야구장 같은 특정 공간을 의도적으로 한정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작가 개인의 일상 속 체험에서 비롯된 풍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숲을 연상케 하는 건설현장에서부터 지하철역에 붙여진 가지각색의 타일들, 혹은 버려진 낡은 기계들처럼 도시 속의 구조물들이 대상이 됩니다. 작가는 사진으로 기록해둔 이미지들을 회화로 옮기면서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바탕으로 그 대상만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특성을 화로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곳의 상황과 구성 요소에 따라 들려오는 풍경에 담긴 소리는 복합적인 감정들과 함께 그의 캔버스에 붓질과 색채로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한 장소에서 파생되는 소리를 눈에 보이는 조형으로, 구조적인 형체나 대상을 들리는 색채로 표현하며 작가는 작품을 자신의 심적 경험과 기억들로 새롭게 변주합니다. 작가가 모험하듯 세상을 유랑하면서 기록한 대상들은 우연한 조우의 대상이기에 어디에나 있는(Everywhere) 것이지만, 작가만이 볼 수 있는 어디에도 없는(Nowhere) 풍경이되어 작가의 경험과 기억이 회화로 재구성되는 것입니다.
폭력에 의한 문명 탄생
작가 안효찬은 자신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과연 일반 관객에게 얼마큼 받아들여지며 작가의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만으로도 그 작품이 충분한 기능을 다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왔습니다. 인간과 예술 사이에 놓인 난해한 작품들의 본질과 소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온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업을 해나가며 관객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메시지 또한 개인만의 갇힌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진정성과 재미로 무장한 사물(Object)의 이야기를 제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우리 안에 우리> 시리즈는 누워 있는 돼지와 그 위에 무언가를 건설하는 공사 현장을 통해 자연을 착취하며 건설되어온 문명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종종 제사상에 오르곤 하는 돼지는 희생을 상징하며, 나아가 발전과 개발을 위해 박탈된 누군가의 자유로 의미는 확장됩니다. 활짝 웃고 있는 돼지의 표정과는 상반되게 묵직한 주제를 담은 그의 작품은 문명이 폭력을 통해 탄생했고 유지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폭로합니다.
주변에 대한 생각과 인식의 확장
각 작가들이 보여주는 작품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면면을 조망하여 보편적 인식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차이와 다름을 시각어법으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작품을 살펴보며 의미를 곱씹다 보면 주변에 대한 생각과 인식이 확장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역량 있는 영남지역 신진작가들이 이번 전시로 자신의 임계점을 넘어 보다 깊이 있는 작품을 쏟아내길 기대하며, 관심있는 분들은 전시장에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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