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태어난 발명왕과 근대 과학의 아버지
‘개선’의 토머스 에디슨 & ‘의심’의 갈릴레오 갈릴레이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지기입니다.
2013년,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번 주는 아쉬움이 가득한 한 주였을 거예요. 2월 11일, 설 연휴의 끄트머리로 시작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으니까요. 오늘은 이런 아쉬움, 무기력한 기분을 몰아내고 금주를 조금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해요.
바로 지금으로부터 166년 전 2월 11일에 태어난 토머스 에디슨과 449년 전 2월 15일에 태어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야기입니다.
유에서 쓸모 있는 유를 창조하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세상에 발명가는 많습니다. 하지만 ‘발명왕’이란 수식어가 이름의 일부분처럼 붙는 사람은 아마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 유일할 것입니다. 1847년 2월 11일에 태어나 1931년 10월 18일 눈을 감기까지 에디슨은 특허 수 1000건이 넘는 발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발명들로 세상에 기여했고요. 괜히 ‘발명왕’이 아닌 것이죠.
에디슨 하면 달걀을 품어 부화시키려고 한 일화, 엉뚱함을 주체 못해 결국 초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어머니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엉뚱할 정도의 호기심과 실험정신으로 에디슨은 이후로도 사고도 많이 치고 발명도 많이 했어요.
먼저 토머스 에디슨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12살 때부터 포트휴런과 디트로이트를 오가는 기차에서 신문팔이, 간식팔이 등을 했는데요. 일을 하면서도 기차에 실험기구를 옮겨놓고 실험에 열중하다가 화재 사고를 일으킵니다.
비슷한 일이 20살 때 또 있습니다. 당시 웨스턴유니언 직원으로 일하던 에디슨은 밤에 사무실에 남아 실험과 독서를 했다고 해요. 결국 어느 날 배터리 실험에 몰두하다 황산을 흘리면서 해고당하게 되고요.
▲ CC By-SA Andrew Balet, Wikipedia
1868년 드디어 에디슨의 왕성한 호기심과 실험 정신이 첫 번째 특허품, 전기 투표기록기란 열매를 맺습니다. 15살 때 역장의 자녀를 구하고 답례로 전신술을 배우며 발을 들인 전신, 전기의 세계에서 처음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이때부터 에디슨은 거의 발명 기계가 됩니다. 다음해에는 주식상장 표시기 등을 발명하고, 1871년 인자전신기, 1872년 이중전신기, 1876년 탄소전화기, 1877년 축음기, 1879년 백열전구, 1891년 영화 촬영기와 영사기, 1891년부터 1900년까지 자기선광법, 1900년부터 1910년까지 에디슨 축전기 등을 쭉쭉 발명해냅니다.
이중 백열전구는 현재 우리가 기억하는 에디슨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발명품입니다. 발명으로 그친 게
아니라 관련 산업의 탄생과 성장으로까지 이어졌으니까요. 그런데 이 혁신적인 발명품은 무에서 창조된 것은 아닙니다. 백열전구뿐만 아니라 토머스 에디슨의 발명품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나는 나 이전의 마지막 사람이 멈추고 남겨 놓은 것에서 출발한다."
에디슨이 제출한 백열전구 특허신청서에 적혀 있는 말이라고 해요. 그의 말처럼 에디슨은 다른 사람의 특허 취득
발명품과 자신의 발명품을 ‘보완’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기존의 것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을까,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를 원동력으로 가치 있는 발명품들을
세상에 내놓은 것입니다.
주입식 지식을 의심하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 갈릴레오 갈릴레이
1564년 2월 15일, 이탈리아의 피사에서 태어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근대 과학의 아버지, 근대 천문학의 아버지,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 박사를 비롯한 수많은
과학인들, 그리고 세계가 갈릴레오를 그렇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하고, 낙하 물체의 등가속도운동 법칙을 증명하며 직접 제작한 망원경으로 달의 표면과 목성의 위성 및 태양의 흑점을 관측했습니다. 이를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했고요. 과학 연구 방법의 틀을 세웠거든요.
갈릴레오는 17살에 아버지의 권유로 피사 대학의 의학부에 입학하는데요. 전공보다도 수학과 과학에 더 열중하며 갈릴레오에게 과학자의 꿈을 심어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탐독했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어나감에 따라 문제점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해요.
갈릴레오는 점점 기록돼 있는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연현상 그 자체에 주목하는 태도를 지니게 됐고요. 이로 인해 기존 학설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는 교수들과 맞서는 상황이 종종 벌어졌다고 합니다. 결국 1584년 대학을 중퇴합니다.
이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가정교사, 피사 대학과 베네치아 파도바 대학의 강사로 활동하는데요. 1609년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됐다는 소식을 듣곤 직접 망원경을 제작해 천체 관측에 나섭니다. 그리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 달리 달의 지형이 매끈매끈하지 않고 산과 계곡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 태양 흑점을 밝혀냅니다.
또 목성에 위성이 있다는 것도 처음 세상에 알렸습니다. 현재 갈릴레이 위성으로 통하는 4개의 위성, 이오, 에우로파, 칼리스토, 가니메데가 갈릴레오가 발견한 목성의 위성들이에요.
당시 세상의 진리는 천동설이었습니다만, 갈릴레오는 그간의 진리보다 이렇게 자신의 눈으로 직접 관측하고 쌓은 지식의 손을 들어줍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한 것이죠. 이게 종교재판을 부르고,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란 말을 남겼다는 설로도 귀결되는 거고요.
이렇게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기존 상식의 답습을 반대했습니다. 일단 의심한 후, 수학적인 추론과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발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과학적인 연구 방법이 갈릴레오의 많은 업적을 관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2월에 태어난 두 명의 위인 중 한 명은 기존의 것을 개선하는 아이디어로, 다른 한 명은 기존의 것을 의심하는 아이디어로 역사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이들의 이런 접근법은 물론 현재에도 유효한 것이고요, 여러분,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개선하거나 의심해 보세요. 에디슨과 갈릴레오처럼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지 모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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