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도의 영화 읽어주는 남자] 변화의 시작은 작고 조용하다: 헬프(The Help)

변화의 시작은 작고 조용하다

용기 있는 그녀들의 선택,‘ 헬프(The Help)’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K. 롤링은 데뷔 작가라는 이유로 수많은 저작권 대행사와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받았지요. 그 설움이 얼마나 컸을까요. 데뷔 작가는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 거라는 편견이 객관적 평가를 방해했던 건 아닐까요. 

<헬프(The Help)>도 버금가는 설움을 겪은 소설입니다. 저자인 캐스린 스토킷의 데뷔작인데다가 무려 60개의 저작권 대행사로부터 외면을 당했으니까요. 그랬던 이 작품의 성과는 실로 놀랍습니다. 2011년 12월까지 550만 권 넘게 팔렸고, 35개국에서 번역됐다고 하지요. 무척 흥미로운 건 이 책을 낸 펭귄출판사가 <해리 포터>에 퇴짜를 놓았다는 점입니다. <헬프>는 동명의 걸작 영화로 탄생했고, 2012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습니다. 주인공들은 숱한 인종차별적 ‘퇴짜’를 겪으며 굴종의 삶을 산 흑인 여성들입니다.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백인 여기자에게 관심의 대상이 됐는지, 그 관심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추적합니다.

때는 1963년, 신출내기 여기자 스키터(엠마 톰슨)는 차별의 실태를 책으로 내려 합니다. 문제는 ‘흑인 하녀(help)’들의 관점에서 쓴다는 점. 백인의 눈초리가 서슬 푸른 환경에서 스키터의 도전은 분명 위험합니다. 당연히 흑인들은 경계하며 피합니다. 그런데 중년의 에이블린(바이올라 데이비스)이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나섭니다. 

흑인을 유난히 경멸하는 백인여성연맹 회장이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는데다가, 백인단체의 무차별적 보복이 두려울 텐데도 에이블린에게 용기를 심어준 건 마을 성직자의 말씀입니다. “비록 육신은 나약하지만, 그럼에도 옳은 일을 과감히 행하는 것이 용기입니다(Courage is daring to do what is right in spite of the weakness of our flesh).”

에이블린의 친구 미니(옥타비아 스펜서)도 비밀 인터뷰에 가세합니다. 그런데 쌍수를 들어 반겨야 할 에이블린이 흔들립니다. 이웃의 흑인 청년이 집단테러로 목숨을 잃었거든요. 백인 공장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외동아들을 떠올린 에이블린은 주먹을 불끈쥡니다. 그리곤 더 많은 진실을 고백합니다. 흑인들의 박해가 증가할수록 더 많은 제보자들이 인터뷰에 가세합니다.

책이 완성될까요? 완성되면 책의 무대인 잭슨 마을이 발칵 뒤집히지 않을까요? 흑인 하녀들을 괴롭힌 백인 주부들의 치부가 고스란히, 적나라하게 공개될 테니까요. 그런데 출간 이후의 결과는? 책에 등장하는 백인 주부들이 자기네들 얘기는 절대 아니라며 애써 부인해 버립니다. 

책이 성공하자 스키터는 뉴욕의 출판사로부터 ‘모셔가겠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달려갈까요? 머뭇거립니다. 흑인 친구들의 앞날이 걱정된 것이지요. 그러자 에이블린이 충고합니다. “여기선 우리가 싸웁니다. 아가씬 아가씨의 삶을 찾아 떠나세요.”

영화 ‘헬프’는 에이블린의 목소리로 결말을 맺습니다.

‘변화의 시작은 작고 조용하다(Change begins with a whisper)’는 광고 문구가 그녀의 내레이션에 힘을 실어주는군요. “변화는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변화의 시작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Change is difficult. But it starts by telling the truth).”

- 영화 배급사: 한국소니픽쳐스

이미도 외화번역가, 작가. '장화 신은 고양이’,‘쿵푸 팬더’시리즈,‘슈렉’시리즈,‘진주만’,‘반지의 제왕’ 3부작,‘아메리칸 뷰티’, ‘글래디에이터' 등 480여 편의 영화를 번역했고, <이미도의 영어선물>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등의 산문집과 <이미도의 등 푸른 활어영어> <영화백개사전 영어백과사전> 등의 영어 교재를 집필했습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코오롱사외보'살맛나는세상' 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