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방네 잡화점] 최초의 캔뚜껑, 건망증과 불면증의 합작품?

201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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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캔뚜껑, 건망증과 불면증의 합작품?

 

캔뚜껑 딸 때 ! ~하고 나는 특유의 청량한 소리. 듣기만 해도 왠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이 소리는 캔음료 광고의 완소 아이템입니다. 캔뚜껑이 없었다면 그 소리가 주는 짜릿한 묘미도 느끼지 못했겠지만, 무엇보다 캔음료를 지금처럼 간편하게 마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흔하게 접하면서 그 편리함의 소중함을 간과하기 쉬운데요. 캔뚜껑은 1960년대 미국 음료업계와 포장업계를 발칵 뒤집고 소비행태까지 바꿔버린 혁신 발명품이었습니다. 그 이전엔 캔에 담긴 음료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기 위해선 아래 사진들과 같이 생긴 별도의 캔따개가 필요했습니다.

 

 



 

좀 무시무시하게 생겼죠? 손가락을 고리에 끼워 잡아 당기기만 하면 열리는 지금의 캔뚜껑과는 많이 다릅니다. 저 캔따개는 갈고리처럼 생긴 날카로운 부분을 캔 윗부분에 꽂아 구멍을 내서 내용물을 빼내거나, 캔 가장자리를 찍어 돌려가며 열어야 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오른쪽 사진과 비슷하게 생긴 캔따개를 집에서 쓰곤 했죠. 힘도 들고 시간이 걸려 귀찮았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을 바꾼 캔뚜껑. 누가, 언제, , 어떻게 발명했을까요?

 

 캔뚜껑을 발명한 주인공은 미국의 어멀 프레이즈(Ermal Fraze)입니다. 1913년생인 프레이즈는 원래 농장 출신이었으나, 1940년대에 공구 제작자로 전직하면서 남다른 손재주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공구와 기계, 부품이 인근 공장에서 큰 인기를 얻자, 1949년 오하이오주 데이튼에 ‘The Dayton Reliable Tool and Manufacturing Company’라는 ‘1인 기업까지 설립합니다.

 

처음엔 혼자 운영했으나, 쇄도하는 주문 물량을 감당 못해 직원들을 고용하면서 회사 규모도 커집니다. 1950년대엔 GE, 포드, 크라이슬러 등 대기업은 물론, NASA에도 납품을 하는 등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습니다.

 

공구 장인으로 잘 나가던 프레이즈는 1959년 어느 날 가족이랑 친구들과 함께 피크닉을 가서 캔음료를 마시려다 당황합니다. 깜빡 하고 당시 교회 열쇠(Church Key)’라 불리던 캔따개를 집에 두고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위의 캔따개 사진 중 왼쪽 것이 교회 열쇠형태입니다. 교회 열쇠랑 비슷하게 생겨 그렇게 불렀다네요.) 어떻게 해서든 음료를 꼭 마셔야 할 정도로 목이 말랐는지, 자동차 범퍼의 뾰족한 부분에 캔을 끼워 넣어서 엄청난 수고 끝에 캔 열기엔 성공합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며 이런저런 망상 중이던 프레이즈는 문득 피크닉 캔따개 사건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캔따개 없이 캔을 편리하게 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그 결과, 캔 상단에 구멍이 날 수 있도록 살짝 금을 낸 뒤, 여기에 지렛대 형태의 작은 고리를 고정시키면, 이 고리로 쉽게 금 낸 부분을 열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이렇게 고안해 낸 것이 바로 풀탭(Pull-Tab)’ 방식의 캔뚜껑입니다. 그래서

 



 

1963년 위와 같은 형태의 캔뚜껑이 발명됩니다. 그러나 작은 공구 제작회사가 전국적으로 이를 활용하기엔 어려움이 많았기에, 포장용기 제조 대기업인 알코아에 특허를 팝니다. 알코아는 그의 아이디어를 곧바로 상업화했습니다. 피츠버그 양조회사(Pittsburg Brewing Company)의 아이언시티(iron city) 캔맥주 디자인에 처음 적용한 것이죠.

 



 

바로 위 사진의 맥주캔입니다. 보이시죠? ‘EASY-OPEN SNAP TOP’이라는 홍보 문구. 결과는 ~’. 편리함에 반한 소비자들이 이 맥주에 열광하면서 제품의 연간 매출은 200%가 넘게 뛰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옆면에 적었던 ‘NEW’‘NO.1’으로 바꿀 정도로, 유일무이한 캔 스타일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죠. 이에 질세라 다른 회사들도 앞다투어 이 방식을 쓰게 되면서 발명 2년 만인 1965, 미국 맥주 양조회사의 약 75%가 프레이즈의 캔뚜껑을 사용하게 됩니다.

 

음료산업에 혁신과 대박을 가져왔지만, 프레이즈의 캔뚜껑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우선 캔뚜껑을 절단한 부분이 날카로워서 음료를 마시다 입술을 베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요.

 



 

더 심각한 문제는 아무데나 버려지는 캔뚜껑으로 인한 환경오염이었습니다. 미국 전역 곳곳에 캔뚜껑 더미가 널브러지고, 야생동물이 이를 주워먹어 탈이 나거나 죽는 사례가 늘면서 대안 마련이 시급해졌습니다.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요? 풀탭 캔뚜껑의 발명가인 프레이즈는 이 문제의 해결사로 다시 나섭니다. 1977, 고리를 잡아당기면 캔뚜껑이 떨어지지 않고 캔 안으로 말려 들어가며 열리는 방식의 팝탑(Pop-Top)’ 캔뚜껑을 발명한 것입니다. 캔뚜껑이 캔에 부착되어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는 동시에, 입술이 절단면에 닿는 부분을 줄여 상처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생겼습니다. 굉장히 익숙하죠? 팝탑 캔뚜껑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캔뚜껑입니다. 간편함에 친환경까지. 그야말로 ‘Lifestyle Innovation’입니다. 어딘가에서 캔뚜껑이 열릴 때마다 입금이 된다니, 프레이즈와 그의 회사가 캔뚜껑 특허로 벌어들인 돈 역시 상상을 초월하겠죠?

 

프레이즈가 피크닉 갈 때 캔따개를 챙겨 갔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캔음료를 마실 때마다 캔따개로 구멍을 뚫는 등의 수고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혁신이란 단어를 접할 때마다 너무 대단하고 부담스럽게만 여기기 쉬운데요. 프레이즈의 캔뚜껑 발명처럼,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과 생활 속 불편함에 대한 고민, 이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혁신 아이디어가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 코너 남서방네 잡화점이 아닌 입니다

일상 속의 혁신을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여러분과 가볍게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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