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길에서 큰 꿈을 키우다
시골 마을에 작은도서관 만들어
소외된 아이들 보살펴온
김선자 씨
보살핌이 부족했던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웃고, 한글을 모르던 어르신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시를 쓰며,
시골살이를 해보지 않은 청년들이
자기다운 꿈을 펼쳐가는 곳.
김선자(53) 씨가 곡성군의
한 시골 마을에 일군 ‘길작은도서관’에,
우리가 잃어버린 희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도서관
“지역아동센터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작은도서관’이에요. 놀이터에 가까워요.
아이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마음껏
놀다 가게 하는 게 우리 도서관의
존재 이유예요.”
2004년 8월 어느 날 김선자 씨는 밤이 깊도록
밖에서 놀고 있는 동네 아이들을 봤다.
왜 여태 이러고 있는지 물어보니,
자신들을 길러주는 조부모가 논밭 일을
하느라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빈집에 들어가기 싫어 밥도 굶은 채
바깥을 서성이던 아이들.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었다.
그게 도서관이었다.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한 데다
자녀들을 위해 책을 많이 모아뒀던 그는
책으로 가득 채운 방 한 칸을
그 아이들을 위해 썼다.
학교를 마치면 그 방으로 와서
책을 보며 놀게 하고, 저녁에는 밥을 먹인 뒤
마을 길을 함께 산책했다.
밤이 오면 아이들을 일일이 데려다줬다.
집에서 시작한 ‘초미니도서관’이었다.
24시간 문을 여는 까닭에
심리적 파도가 거센 사춘기 아이들에게
최고의 안식처가 돼주기도 했다.
마음이 고슴도치처럼 뾰족해진 아이들은
도서관으로 ‘가출’해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풀고 갔다.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어르신들의 배움터로, 청년들의 꿈터로
길작은도서관은 할머니들의 배움터로도
제 몫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어느 날 동네 할머니 세 분이
책 정리를 도와주러 도서관에 오셨는데,
일하다 문득 보니 할머니 한 분이
책을 거꾸로 꽂으셨더라고요.
한글을 모르신다는 걸 그 순간 알았어요.”
도서관을 찾아온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지도하는 한편으로,
곡성군의 지원을 받아 옆 마을인
금산마을 할머니들에게도 한글을 가르쳤다.
시도 쓰게 했다. 자기만의 언어로 쓴
아름다운 시들은 시집으로도 출판되고
〈시인 할매〉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019년에는 어르신들의 인생이 담긴
20권의 그림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온 마음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응원하는 일.
그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다.
이곳을 꾸리기 위해 빚도 냈지만
그 어떤 후원금은 받지 않고 있거든요.
경제적으로 힘든 순간이 많지만,
아이들이 밝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그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아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르신들의 배움터인
이곳은 청년들의 꿈터이기도 하다.
길작은도서관의 역사와 할머니들의 시에
감동받은 도시 청년들이 8년 전부터
도서관을 등대 삼아 하나둘 이주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청년들이 도서관의
든든한 일손이 되어줬어요.
아이들의 따뜻한 언니 오빠가 되어주고,
할머니들의 그림책 작업도 도와줬죠.
현재 길작은도서관을 중심으로
모여든 청년은 모두 13명이에요.
그들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하려 해요."
그 청년들 덕분에 2018년부터
길작은도서관에서 ‘마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일러스트반, 타악기반, 바이올린반,
영상반, 그림책활동반….
동네 곳곳에 존재하는 벽화들은
모두 청년들과 아이들이 함께 그린 것이다.
곡성군 입면 서봉마을에 자리한 이곳,
아이들은 텃밭에서 그 계절의 작물을 기른다.
그것들로 요리를 해 먹으며
배움과 놀이를 동시에 충족한다.
손수 만든 간식이나 직접 담근 김장 김치를
이웃에 배달해 나눔도 실천한다.
도서관보다 돌봄교실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외롭던 아이들의 사랑방.
도서관 하나 문을 열었을 뿐인데,
아이들이 모이고
어르신들이 모이고
청년들이 모였다.
‘나비효과’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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