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 어둠 속의 이웃에 선사하는 아주 작은 빛 한 줌

20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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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이웃에 선사하는 아주 작은 빛 한 줌  

부산생명의전화 상담봉사자 박정희 씨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 지기입니다.


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고, 독서는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줍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만난 박정희(70) 씨에겐 그런 존재는 바로 봉사입니다. 삶의 위기에 처했거나 불행의 터널 속에 갇힌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온 22년. 전화상담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우주를 접하면서, 세상을 향한 시야와 인간을 향한 이해를 그는 꾸준히 넓혀왔습니다. 나눔은 배움을 불러오고, 사람은 보람을 데려옵니다. 갈수록 삶이 깊어진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경청과 공감으로 쌓아올린 22년 


그가 부산생명의전화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6년 새봄의 일이었습니다. 네 명의 자녀 가운데 첫째는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나머지 셋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때였습니다. 자녀들이 둥지를 떠나자 갑작스레 남게 된 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싶었고, 때마침 부산생명의전화에서 전화상담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신문 공고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이거다 싶었습니다. 교육비가 있다기에 잠시 망설였지만, 상담심리사인 큰딸의 지원과 응원으로 용기를 냈습니다.


“3개월간 이론교육을 받은 뒤 1개월간 전화상담 실무교육을 받았어요. 그해 말까지 선배들이 전화받는 모습을 모니터 하며 상담의 기초를 쌓아나갔죠.” 


본격적인 전화상담은 이듬해 1월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두 번 3시간 30분씩, 단 한 번의 빠짐도 없이 상담봉사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부산생명의전화가 40주년을 맞은 지난해 그는 전화상담 2,000시간을 돌파해  ‘상담봉사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수화기를 든 그의 손가락에, 그날 부상으로 받은 금반지가 반짝거립니다. 





얼어버린 마음을 녹이는 작은 연결고리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 가운데는 고통의 터널에 갇혀 그 너머를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과의 통화에서 그가 하는 일은 가만히 경청하고 충분히 공감해주는 것.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닙니다. 상대방이 가진 것을 예리하게 발견하고, ‘당신에겐 이것이 있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해줍니다. 감사할 만한 것을 찾아주는 것이 상대방의 희망 찾기에 적게나마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에게 온갖 피해를 입고 살아온 한 젊은 여성에겐 ‘가족보다 당신이 먼저’라고 냉철히 답해줍니다. 부당한 짐이라면 과감히 내려놓으라고 말해준 것입니다. 비록 전화 통화였지만 상대방이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그는 느꼈습니다. 참으로 보람된 순간이었습니다. 





나눔, 그 끝없는 성장의 이름


그토록 오래 해오고도 긴장감은 아직 그의 것입니다. 상담 시작 10분 전. 가벼운 떨림과 두근거림이 그의 몸에 깃듭니다. 오늘은 또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를 건네올까, 그들의 고통과 아픔에 자신은 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걸려오는 전화 앞에서 그는 번번이 처음입니다. 사람도 사연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인데요. 굳건한 초심으로 그가 상담실 의자에 앉습니다. 경건한 공기가 좁은 공간을 순식간에 에워쌉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쏟아낸 감정들을 잘 처리해야 봉사를 지속할 수 있어요. 다양한 활동이 그래서 필요하죠.”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는 기쁨 


상담봉사자들은 꾸준히 재교육을 받으며 스스로를 단련합니다. 소그룹 활동도 병행합니다. 걷기, 영화 감상, 독서토론, 미술치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좀 더 전문적인 상담원으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소그룹 활동으로 영화 감상과 그림 그리기를 해왔습니다. 그 가운데 그림은 미처 몰랐던 소중한 재능이었습니다. 화첩에 그림이 채워질수록 삶의 기쁨이 쌓여간다고 하는데요. 나눔이 그에게 준 선물이기도 합니다.





환한 핑크빛으로 물든 봉사 인생 


그는 2013년부터 한국국학진흥원이 진행하는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로도 활동 중입니다. 일주일에 세 번 부산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방문해, 우리의 옛이야기를 따뜻한 육성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부산시 교육정보원을 통해 10년간 청소년 진로상담을, 부산의 한 노인대학에서 6년간 교양강좌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쉼 없이 교류하면서, 자신이 줄 수 있는 도움이 무엇인지 그는 끝없이 고민해왔습니다.


“상담봉사를 한 날엔 남편과 밖에서 저녁식사를 해요. 그 시간만큼은 남편이 저의 상담자예요.”


봉사를 오래오래 할 생각이니, 봉사일의 데이트도 두고두고 지속될 것입니다. 나눔에도 색깔이 있다면, 그의 것은 환한 핑크빛입니다. 





※ 해당 기사는 코오롱 사외보 〈살맛나는 세상〉 vol.122를 재가공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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