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나눔
의료봉사자 정서옥 씨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 지기입니다.
매주 금요일에 진료실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정서옥 씨는 11월 18일부터 주 2회 봉사에 나섭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복지관으로 나오기 어려운 홀몸어르신 댁을 방문해 건강검진을 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복지관에 나와서 지내다, 거동이 불편해 집에만 계신 어르신을 찾아가 같이 눈물 콧물 쏟으며 그간 밀린 이야기를 나눕니다.
정서옥 씨는 83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얼굴도 곱고, 허리도 곧습니다. 아직 복용하는 약도 없고, 장거리 운전도 문제없습니다. 그녀는 퇴직하면 꼭 하고 싶던 버킷리스트 두 가지도 모두 이루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귀농이고, 또 하나는 맘껏 봉사하며 사는 것이었는데요.
정서옥 씨는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려 했었습니다. 시험을 치러 광주대학교에 합격했지만, 형제 많은 집안에서 여자가 대학을 간다니 허락해줄 리 없었다. 그래서 준교사 자격증으로 초등학생을 1년 가르쳤습니다. 그동안 벌어둔 돈으로 다시 대학을 가려 했지만, 다시 반대에 부딪혀 국비로 수업을 받는 간호대에 무려 11 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습니다. 그렇게 간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지금은 봉사를 하며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전직 간호사 정서옥(83) 씨는 한 시간 반을 달려 서울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 도착합니다. 일주일에 이틀은 소풍 가듯 복지관을 찾는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1인 3역 복지관을 누비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 솔~~.”
따뜻한 온돌방에 모인 어르신들은 의료봉사팀 정서옥 씨와 조남인 원장(촉탁의)의 지도에 따라 노래를 부릅니다. 마음은 이미 그 옛날의 과수원 길을 걷는 듯합니다. 산 너머 남촌, 울고 넘는 박달재, 흙에 살리라 등 노래가 계속되면서 분위기가 한껏 올랐습니다.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불러요. 혈액순환이 잘 안되면 기립성 저혈압이 생겨 앉았다 일어나기 힘들어요. 하지만 손뼉을 치면 손끝까지 혈액순환이 되니까 좋아요.”
정서옥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팔을 쭉 펴서 하늘로 올렸다가 다리를 쭉 펴고 내리게 합니다. 그리고 어르신들에게 다음 동작을 알려주며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당당하다!'를 외치라고 주문합니다. 노래를 하면서 어르신의 정서를 보듬고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치매예방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가족처럼, 친구처럼 건강지킴이
“어, 혈압이 150에 90이 나왔네. 뛰어왔어요?”
“네.”
“그럼 그렇지. 조금 있다가 다시 재 봅시다.”
어르신을 20년간 관리해오다 보니 아주 작은 변화라 해도 민감하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건강상담으로 오는 어르신 중에는 혈압과 당뇨 문제가 있는 경우가 가장 많은데요. 그럴 때는 ‘혈압이 높다. 이러다 쓰러지면 큰일 난다. 아직 젊으니까 어서 큰 병원 가서 진단을 받아라.’ 등의 권유합니다. 건강 정도에 따라 알맞은 식이요법이나 운동을 추천하며 내 가족처럼 살피고 챙깁니다.
사실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봉사를 받아야 할 연배에 오히려 봉사활동을 늘이고 있으니 주변에서 걱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정서옥 씨에게 봉사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에 감사함 을 누리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봉사에 대한 오랜 다짐
정서옥 씨는 퇴직 후 봉사활동에 매진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995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휴가를 내서 서울시립청소년사업관에서 청소년 상담도 해왔습니다. 퇴근 후에는 틈틈이 장애인과 중증 암 환자가 있는 임종의 집, 요셉의 집을 다니며 말벗, 투약 보조, 식사수발과 목욕보조까지 했는데요.
본격적인 봉사활동은 퇴직한 뒤인 1998년부터 동료 안옥분 씨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찾아간 곳은 노인복지시설 ‘인덕원’이었습니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어르신의 혈압측정, 목욕, 식사를 도왔습니다. 일 년 뒤인 1999년, 후배 이영자 씨가 퇴직 후 합류하면서 은평노인종합사회복지관 봉사도 시작했습니다. 개관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약품 대장이나 차트 관리 등 서류 체계까지 만들어주었습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봉사 유전자
어린 시절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났다. 완장을 찬 사람들이 나타나 주민들을 데려가면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버지도 돌아가실 뻔했어요. 그런데 우리 집 머슴으로 있던 아저씨가 아버지를 보신 거예요. ‘이 사람은 내가 데려가겠다’며 아버지를 데리고 나와 창고에 숨겨주셨대요.”
평소에 나누며 산 덕분에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2001년 1월 4일부터 2019년 11월 15일 현재까지 총 1,168회 6,743여 시간의 봉사 시간(봉사 인증 제도 시행 후부터의 시간)을 기록한 정서옥 씨. 그가 이렇게 봉사하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어머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덕분이라 말합니다. 정서옥 씨는 항상 복지관 어르신들과 간호사와 환자가 아닌 언니, 동생, 친구처럼 지내는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는 진료실로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그녀의 오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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