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 배고픈 설움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20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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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설움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무료급식소에서 20년 간 봉사해 온 김정길 씨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 지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사람은 무료급식소에서 20년 동안 봉사해온 80세의 김정길 씨입니다. 삶의 모든 필연은 베일을 쓰고 온다고 했습니다. 김정길 씨가 봉사의 삶을 살게 된 것 역시 우연처럼 보이지만 틀림없는 필연이었을 것입니다. 배고프고 가난해서 느끼는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김정길 씨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20년 봉사인생을 지금부터 들여다보겠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는 봉사의 시간

매일 아침 6시 45분, 김정길 씨는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프란치스꼬의집을 찾습니다. 굶주리고 고단한 노숙인들을 위해 따뜻하고 푸짐한 점심을 대접하기 위함입니다. 그가 사는 이태원에서 이곳 제기동까지 대중교통으로 꼬박 30~40분이 걸리지만, 배고픈 이웃의 설움을 덜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이토록 고된 새벽길을 매일같이 나서고 있습니다.


“프란치스꼬의집이 쉬는 수요일,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와서 봉사하고 있어요. 제가 맡은 일은 식사재료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에요. 하루 평균 400인분의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에 이른 시간부터 일을 시작해야 하죠.”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이어온 경력만 20년째.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한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16년을, 4년 전부터는 프란치스꼬의집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료급식소가 쉬는 날을 제외하고는 지난 20년 동안 단하루도 거르지 않고 봉사활동을 해왔는데요. 


“한 곳에서 오랫동안 봉사를 하니까 하루는 아들이다른 곳에서도 봉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더라고요. 마땅한 데가 있을까 알아보다가 프란치스꼬의집을 알게 됐어요. 직접 와보니 신부님들과 수사님들이 재료손질, 요리, 배식, 설거지까지 직접 다 하시느라 진땀을 빼고 계셨어요.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봉사해야 할 곳이 여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고픔이 얼마나 서러운지 알기에 


20년째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지만, 처음부터 봉사활동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픈 삶을 살아왔기에, 그저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했기에 누구를 도우며 살아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 서럽고 고달픈 삶이었습니다. 공부를 곧잘 했지만, 집안 형편 탓에 중학교는 가지 못했습니다. 광부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어린 남동생 셋을 건사하기 위해 학교 대신 공장을 다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구 한 번 탓하지 않고 열심히 일해 남동생들을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가르쳤습니다. 이제 내몸 하나 잘 건사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던 찰나, 중매로 남편을 소개받아 27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생각처럼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독한 술을 9~10병씩 마시는 남편. 그때마다 그는 남편의 폭행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아이 셋을 두고도 남편은 돈을 벌어오는 법이 없었습니다. 직접 손수레를 끌고 동네를 돌며 종이박스와 생선궤짝을 주워 팔아다 자녀들을 먹이고 입혔습니다.





우연처럼 다가온 봉사라는 운명


그에게 봉사의 삶은 우연처럼 다가왔습니다. 바쁘고 고된 하루를 살아가며 매일같이 지나치던 길, 젊은 남자 셋이 둘러앉아 분주하게 양파를 까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것. 평소라면 눈에 크게 띄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날따라 그 모습이 눈에 밟혀 다가가 말을 건네게 됐습니다.


“노숙인들에게 무료로 밥을 나누어주는 곳이라고 하는 거예요. 좀 도와드릴까 물어봤더니 그러면 고맙겠대요. 그날 이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들르다가, 얼마 뒤부터는 아예 시간을 내서 다니기 시작했어요. 별거 아닌 것처럼 봉사를 시작하게 된 셈이죠. 나처럼 힘들고 배고픈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알기에, 그저 따뜻한 위로 한 그릇 전해주고파 시작한 봉사가 벌써 20년째. 8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몸이 편한 것보다 마음이 편한 것이 낫다며 고된 봉사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러했듯 그는 내일도 어김없이 새벽길을 나설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겠다는 세상 가장 넉넉한 마음으로.



※ 해당 기사는 코오롱 사외보 〈살맛나는 세상〉 vol.120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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