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 아이들과 첼로로 교감하는 제주 농부 이야기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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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첼로로 교감하는 제주 농부 이야기  

우정선행상 제11회 본상 수장자 김원택 씨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 지기입니다.


제주특별자치도립 제주교향악단 단원이던 김원택(54) 씨는 지난 2003년 이동 연주를 계기로 방문한 천사의 집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당시 천사의 집에는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으로 마련한 첼로 30대가 애물단지처럼 방치되어 있었는데요. 나서서 레슨을 오겠다고 하는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정을 알게 된 김원택 씨는 앞뒤 재지 않고 첼로레슨봉사를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이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의 대가

매주 목요일은 김원택 씨의 제주 천사의 집(아동양육시설, 원장 이명희) 첼로레슨이 있는 날입니다. 레슨은 오후 6시 30분부터 시작되지만 민수(10세, 가명)는 일찌감치 마당에 나와 서성거립니다. 그 마음을 아는지 그 역시 시간보다 일찍 그곳을 방문합니다. 두 사람은 마당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첼로연주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야 레슨실로 올라갑니다. 오늘 연습곡은 ‘나비야’입니다. 처음 하는 수업이 아니지만 활에 송진 칠하는 법, 활 쥐는 법, 악보 읽는 법부터 시작합니다. 또래보다 발육도, 학습능력도 더디기에 매번 기초를 확인하고 또 반복합니다.

“이 계이름이 뭐지?”, “여기서는 박자가 어떻게 되지?” 그의 질문에 민수는 대답 대신 첼로를 치는 것으로 반응합니다. 한 번쯤은 목소리가 커지거나, 표정이 바뀔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친절하게 천천히, 눈높이를 맞추며 반복해서 설명합니다. 몇 날 며칠을 도돌이표처럼 같은 설명을 반복할수록 그는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게 됩니다. 악보를 읽고,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와 교감임을 오랜 봉사 연륜으로 터득했습니다.


“전문연주자가 되길 바라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성과가 나타나길 기대해서는 안 되죠. 그렇다고 참아서는 안 돼요. 그럼 속상하니까 그냥 기다리는거예요. 가끔 이건 꼭 연주해보고 싶다고 악보를 찾아서 가지고 오는 친구를 보면 오히려 기특하고 대견해요.”





아이들 스스로 즐기는 연주가 목표


처음에는 매주 세 차례 초등·중등·고등부로 나누어 아이들을 지도했습니다. 악기를 다룰 줄 몰라 악기가 파손되는 경우 직접 비품을 사서 고치거나, 그래도 어려울 때는 악기점을 찾아가 후원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주말 개인레슨도 그

만두고 천사의 집 아이들에게 집중했습니다. 


“제가 열심히 가르치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를 것이란 기대도 있었어요. 근데 그게 욕심이더라고요. 한 2년쯤 지나서야 깨달았죠. 제 방식으로 끌고 갈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즐길 때까지 기다리고, 아이들이 하는 만큼씩 함께 발맞춰야 한다는 걸요.” 


2005년에 정식으로 ‘엔젤첼로앙상블’이라는 이름으로 창단연주회를 열었습니다. 그날의 감격은 자신의 첫 공연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 뒤로 장애인의 날 특별행사에 기량을 선보였고, 사회복지인 한마음 축제 경연대회에서는 최우수상의 영예도 안았습니다. 무대에서의 연주 경험으로 성취감과 자신감이 붙자 자선음악회를 열었고, 모금된 성금으로 홀몸어르신에게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 직접 전달했습니다.




일상이 된 음악과 봉사


수상 이후, 그에게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퇴직과 동시에 레드향 농사를 시작했고, 천사의 집에서는 주 1회 초등학생 여섯 명을 일대일로 지도하게 된 것입니다. 배우는 아이들은 줄었지만, 그의 봉사요일은 그대로입니다.

작년 11월부터 화요일, 금요일은 서부종합사회복지관 색소폰동호회의 지도까지 맡았습니다. 오랜 봉사의 습관이 이제는 그의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실내에서만 연습하다 보면 실력이 더디 늘어서 공원 연습도 나가요. 자신감을 키워 차차 실버악단으로 정기연주회도 가지려고요. 어린이부터 실버세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종합예술제가 하나의 지역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이제 한 걸음 내딛는 중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구체적인 구상이 서있는 듯합니다.

쉽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많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서로에 대한 책임감과 믿음도 생겼습니다. 그는 오늘도 “평생 아이들과 함께 첼로를 연주하면서 농부로 늙어갈 것”이라고 한 오래전 이야기를 삶으로 엮어가는 중입니다.



※ 해당 기사는 코오롱 사외보 〈살맛나는 세상〉 vol.120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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