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테라피] 참 잘 쓴 국내 소설 컬렉션

[북 테라피] 참 잘 쓴 국내 소설 컬렉션

참 잘 썼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네 이야기




여러분은 국내 소설을 얼마나 자주 읽으시나요? 작년 교보문고에서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국내 소설은 전체 소설 판매의 29.9%를 차지하며 2위를 기록했고, 1위는 31%를 차지한 일본 소설이었다고 해요. 전체 소설을 놓고 봤을 때 70%는 해외 문학이 차지하고 있다는 거죠. 


독자들이 해외 문학을 좋아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는 괜찮은 국내 소설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의외로 국내 소설 쪽에는 참 잘 쓴 소설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정말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감의 폭도 넓고요. 이번 기회에 국내 소설 한 권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참 잘 쓴, 그리고 참 재미있는 국내 소설 4권을 소개합니다.




1.  범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일곱 번째 배심원>, 윤홍기




부끄러움. 그것이 바로 권력자들에겐 없지만, 윤진하에게는 있는 한 가지였다. (365쪽)




한 여고생이 처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소녀의 변사체가 인근 저수지에서 떠올랐고, 경찰은 수사 끝에 인근 노숙자 강윤호를 범인으로 체포하죠. 순순히 자신의 범행을 고백한 노숙자 강윤호는 바로 검찰로 넘겨졌고 윤진하 검사에게 사건이 배당됩니다.

끔찍한 사건이었고, 범인이 자백까지 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형량만 적당히 조정해서 마무리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변수가 발생합니다. 바로 노숙자 강윤호의 국선변호사 김수민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것. 그때부터 사건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검사 윤진하가 보기엔 명명백백한 사건. 대체 국선변호사는 어떤 포인트에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것일까요? 그리고 62세 무직의 장석주는 왜 이 재판의 국민참여재판관으로 참여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의문의 배심원과 출세욕에 가득 찬 검사, 그리고 초짜 국선변호인이 벌이는 이 법정 드라마는 출간 전 이미 영화화가 확정된 만큼 탄탄한 스토리를 갖춘 소설입니다.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무섭기도 한 소설이고요. 결말이 궁금해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2.  제대로 된 집에서 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근린생활자>, 배지영




상욱은 근린생활자로서의 규칙을 말해주었다. 반드시 인터폰으로 확인하고 문을 열어줄 것. 

혹여 구청에 신고가 들어갔을 수 있으니 일단 초인종 누르는 사람은 무시할 것. 

그리고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22쪽)




‘근생’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근린생활시설의 준말로 빌라를 지을 때 상가로 준공 허가를 받은 뒤 주거용으로 바꾼 집을 말해요. 그렇게 짓는 이유는 상가로 신청하면 주차 공간을 덜 확보해도 되니 보다 쉽게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죠. 싱크대랑 보일러만 넣지 않은 채로 허가를 받고, 그 이후에 그것들을 넣어서 집으로 만드는 겁니다. 당연히 구청 단속 대상이 되니 근생은 그야말로 조심, 또 조심하며 살아야 하죠.


<근린생활자>의 주인공 상욱은 부동산 아주머니의 말에 혹하고 넘어가 근린생활자가 됩니다. 월세 집 전전하는 게 지겨워서, 나도 한번 내 집에서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에 조금은 저렴한 집을 택한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내 집이지만 내 집 같지 않은 생활이 시작됩니다. 한 건물에 살지만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신고가 두려워 늘 조심히 살아야 하는 그런 생활이오.

이 책의 주인공은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죠. 




<근린생활자>는 단편 소설집입니다. 다른 단편도 대한민국 비정규직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있는데 매우 현실적이죠. <그것>, <소원은 통일> 등 세대를 넘어 우리들의 슬픈 민낯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입니다.

 



3.  여름밤, 나의 아름다운 도시, 어쩌면 너 때문에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언젠가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둘이 함께 누워 있던 밤에, 규호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카일리가 있음에도 그때 왜 선뜻 나와 사귀기로 했냐고.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228쪽)




HIV 보균자인 주인공은 클럽에서 진탕 취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연극 프로그램북을 파는 일을 하면서 쓰레기 같은 글을 끼적이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클럽 바텐더 규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고, 그 감정을 고백하게 되죠.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규호의 반응은 쿨합니다. 그렇게 둘의 연애가 시작되고, 모든 연애가 그렇듯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대도시를 배경으로 사랑과 이별의 단편 4편을 수록한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 중 표제작 <대도시의 사랑법>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집은 그동안 외면받아왔던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 다른 단편 <재회>는 게이 남성인 주인공이 대학 동기 여성과 동거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도 5년 전 뜨겁게 사랑했던 형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 안에는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나 있고, 모두가 경험하는 사랑과 상실,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또 출간 전 영국에 해외 판권 수출이 확정되는 등 한국소설로는 이례적인 진기록을 남긴 소설이기도 합니다.




4.  그거 자살 아니야, 사실은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다>, 정해연





처벌받고 싶지 않지?

(중략)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채로 권순향은 간신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남자는 권순향에게 다가와 그의 턱을 잡고 자신의 눈을 똑바로 보게 했다.

“그럼 당장 여기서 나가. 그리고 잊어.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처리는 어떻게든 될 거니까.”  (29쪽)




근근이 먹고 살아가던 변호사 김무일에게 어느 날 건물주 권순향이 찾아옵니다. 그러고는 충격적인 고백을 하죠. 7년 전, 이 건물에서 누군가가 사고사로 죽었는데 그게 사실은 사고사가 아니고 자신이 죽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월세가 밀려서 받으러 갔는데, 갑자기 젊은이가 자신한테 달려드는 바람에 우발적으로 죽이게 됐다는 것. 자신도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는데 바로 그때 누군가가 그 집에 나타났고, 입만 다물면 감옥에 가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7년을 침묵하다 이제는 죽을 때가 된 것 같아 자수를 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김무일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뭔가 의심쩍은 부분은 많았지만 수임료만 두둑이 챙기면 된다는 생각에 흔쾌히 변호를 수락하고, 다음 날 기분 좋게 술 한잔 걸친 채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건물주가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자수한 사람이 자살을? 그때부터 김무일은 7년 전 사건부터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이 소설은 겉으로는 추리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의 추악하고 거짓투성이인 권력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리듬 (최지연)

야밤산책》,《결혼은 아직도 연애 중》의 저자이자 5년 연속 책분야 네이버 파워블로그(nayana0725.blog.me)로 선정된 블로거이다.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단, 알라딘 서평단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CECI>, 언론재단, 코오롱 등에 책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으며, 예스24에 일과 직장생활을 주제로 한 <그래봤자, 월급쟁이> 를 연재하고 있다. 《책 읽어주는 책, 북멘토(공저)》,《잘나가는 회사는 왜 나를 선택했다(공저)》등을 썼다.



본 칼럼의 내용은 코오롱 그룹의 공식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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