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대미술을 엿보다, ‘브리티시 페인팅 2019’展

2019.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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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현대미술을 엿보다, ‘브리티시 페인팅 2019’展

코오롱여름문화축제 참여작가 3인 인터뷰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 지기입니다.


지난 7월 15일 시작해 내달 8월 23일까지 진행되는 코오롱 여름 문화축제에 다녀왔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의 주제는 ‘브리티시 페인팅 2019’展으로 현대 미술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은 영국의 현대 미술을 조망하고, 현재 주목받고 있는 아티스트를 만나는 뜻깊은 자리입니다. 스페이스K는 그동안 영국의 회화를 꾸준히 소개한 바 있는데요. 이번 전시를 통해 국제적이면서 동시에 지역적인 영국만의 색채가 가득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실 수 있도록 전시에 참여한 3명의 작가를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실재와 환영을 탐구하는 작가, 린지 불(Bull Lindsey)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린지 불은 인물을 통해 심리 상태나 환영을 탐구하는 회화 작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회화 속 인물들은 독특하고 화려한 드레스와 과장된 화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군중들에 의해 응시하는 연기자들의 세계와 그 이면을 바라봅니다. 커튼 하나를 두고 시공간이 전환되는 무대 뒤의 은밀한 모습은 관람자의 관음적 시선을 피하려는 연기자의 공허한 표정과 함께 불안하고 멜랑꼴리한 분위기가 지배적으로 나타납니다. 보편성에서 벗어난 화려한 분장과 특유의 분위기가 일관된 그의 회화는 특정한 소속이나 주류 밖에 소외된 자들의 심리적 방어 기제에 대한 은유입니다. 





거울 앞에서 자신을 비춰보던 소녀가 그린 현실과 환상 


밝게 웃는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소녀다움이 남아 있습니다. 자신을 소개하며 수줍게 웃어 보이는 그녀는 작품 안에서 가장 자유로워 보입니다. 


“어릴 적 외출하기 전 거울 앞에서 입고 나갈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는 일이 굉장히 즐거웠는데요. 그런 것들이 제 작품 안에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6~80년대 결혼식 모습이나, 무대 뒤 댄서들의 모습을 참고해 이번 작품들을 준비했습니다. 제 작품 속 공간들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상상 속에서 그려내는 부분이 많습니다. 개인적이지만 공공적인, 양면의 시공간 속에 있는 상황을 다룹니다.”


사람 관찰하기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특히 댄서들이 옷을 입고 있는 작품을 추천하는데요. 멜랑꼴리하면서 생동감 있는 부분을 유심히 살펴봐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올가을에는 런던에서, 내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시를 준비 중인 데다 영국 아노미 출판사와 출간을 계획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그녀. 린지 불의 다음 행보가 기대됩니다. 




몸을 움직이며 캔버스와 소통하는 작가 에린 롤러(Lawlor Erin)


런던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에린 롤러는 유화를 예민하게 수용하는 서정적인 분위기의 회화 작품으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유화라는 매체는 특정 회화의 지류에 종속되지도 자기표현의 방식도 아닙니다. 젖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켜켜이 쌓아가기 위해 바닥에 캔버스를 눕혀 작업하는데, 수직축에서 이루어지는 이젤 회화와 대립항을 이루는 그의 수평적 축은 신체적 움직임의 흔적으로 고스란히 남깁니다. 그리고 즉흥적으로 넓고 큰 붓으로 대담하게 쓸어내린 흔적으로 화면을 마무리하며 회화 작업 과정의 본질적 요소를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추상과 구상으로 이분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유화라는 매체의 본성을 가르는 것이 그녀가 원하는 회화입니다. 






전시를 위해 한국에 막 도착한 그녀를 만났습니다. 한옥마을에 숙소를 잡았다는 그녀는 동양의 회화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의 단색화를 비롯해 동양적인 색채 역시 그녀의 작업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그녀는 앞서 설명한 대로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서 작업하는데요. 큰 화면 안에 큰 붓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캔버스를 눕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기존처럼 캔버스를 세워서 할 때보다 바닥에 두는 것이 몸을 더 많이 사용하고, 육체적으로 더 깊이 작품과 교감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내 작품이 하나로 읽히는 것은 원치 않아요.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느끼고 해석하기를 바랍니다.”


그녀의 조언대로 그림을 오랜 시간 보다 보면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겹겹이 색을 쌓아 올려, 여러 가지 색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들일수록 그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특정 무드와 톤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번 전시에 방문하실 계획이라면, 여유를 두고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일정을 짜면 좋겠습니다. 




방치된 폐기물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작가 벤 제이미(Jamie Ben)


벤 제이미는 일상성을 비일상성으로 전환하는 독특한 회화로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젊은 작가입니다. 그는 방치된 폐기물이나 불법 투기물에서 영감을 얻지만, 그의 회화는 궁극적으로 온전히 다른 세계를 다룹니다. 작가가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인 작업실 주변에서 영감을 받고, 그 영감이 회화로 옮겨지면서 객관적인 시각성을 소거한 비일상성으로 치환됩니다. 예를 들면 버려진 신문 속 초상을 해체하고 왜곡하여 그 유사성을 모두 버리고, 일종의 낙서나 회화의 변주처럼 드러냅니다. 다채로운 색채로 채워진 형상들은 그 뒤로 비치는 격자의 규칙에 순응하기보다는 공간을 한층 개방시키는 데 일조합니다. 이렇듯 일상적 것들을 비일상성으로 이끄는 그의 비결정적 형태들은 우리가 가진 위계와 관념으로부터 해방을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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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언어로 설명하는 세계


“나에게 예술은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입니다. 나는 예술이 개인적으로 내가 경험한 것이 어떤 뇌의 지적 측면을 우회한 뒤 관객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내 작품의 주제를 설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요. <통찰력(Insight)>라는 작품은 그 방법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작품의 공정 속에 다양한 비전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한 그림입니다.”


조각과 판화를 주로 작업하는 벤 제이미. 그렇지만 모든 작품의 시작은 의외로 수채화입니다. 그에게 그리드는 드로잉을 확대하며, 평면을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수단이 됩니다. 최종 단계에서 여러 가지 암시를 주기도 합니다. 그는 작품에서 언제나 실현된 것과 제안된 것 사이의 공간을 탐구하려고 하는데요. 이번 전시는 고전적인 회화를 출발점으로 시작해, 현대와 융합시키고 추상화하고자 했습니다. 


영국의 회화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습니다. 영국이라는 지역적 색채를 지켜내면서 동시에 세계와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흥미진진한 현대미술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올여름 스페이스K 에서 열리는 코오롱 여름 문화축제와 함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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