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그룹] 나일론, 내 안에 너있다!
섬유산업의 혁명을 가져온 나일론의 발견부터 코오롱의 탄생까지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지기입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합성섬유 나일론은 좋은 옷감을 넘어 섬유산업의 혁명을 가져온 인류의 획기적인 발명품입니다. 기존에 면이나 마, 모 같은 소재가 주를 이뤘던 근대의 의복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고, ‘기적의 실’이라 불리기도 했는데요. 이 나일론과 코오롱 사이에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코오롱이 한국 섬유산업의 기수가 되었던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코오롱과의 인연을 살피기에 앞서 나일론의 탄생 배경부터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나일론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938년입니다. 듀폰 사에서 독립 연구를 진행하던 유기 화학자 월리스 캐러더스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요. 나일론의 발명은 엄청난 우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캐러더스의 연구팀은 원래 고분자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연구팀원 줄리언 힐이 실험해 실패하고 남은 찌꺼기를 씻던 도중 실처럼 길게 늘어나는 물질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 본 캐러더스는 인공 화학섬유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본격적인 연구에 몰두하게 됩니다.
캐러더스 연구팀은 1934년 최초의 폴리아미드 섬유 합성에 성공했고, 이듬해 석탄의 부산물인 벤젠을 원료로 한 초중합체를 완성합니다. 이후 폴리헥사메틸렌아디파미드(Poly hexamethyleneadipamide)에서 실크보다 부드럽고 탄력성 있는 고운 섬유를 뽑아내는데, 그 섬유가 바로 지금의 나일론입니다.
듀폰 사가 나일론으로 만든 첫 번째 제품은 의외로 칫솔모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거칠고 세균 번식의 위험이 있는 돼지털로 칫솔모를 만들었는데요. 나일론으로 만든 칫솔모는 부드럽고 깨끗해서 고객들이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나일론이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여성용 스타킹 덕분이었습니다.
1939년 뉴욕세계박람회에서 나일론 제품이 첫 선을 보였습니다. 당시 실크스타킹을 신던 여성들은 저렴하면서도 은은한 광택을 자랑하는 나일론 스타킹에 열광했고, 기록에 따르면 발매한 첫 날, 단 몇 시간 만에 4백만 켤레가 팔렸다고 합니다. 이후 나일론은 스타킹뿐 아니라 양말, 낙하산 등 다양한 제품들에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나일론을 사용했을까요?
서양 사회는 산업혁명 이후 직조기술과 방적기술이 발달하여 서민들도 다양한 섬유를 향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50년대 우리나라는 전쟁 등 시대적 상황으로 우리 손으로 섬유를 만든다는 것조차 꿈 같은 일이었는데요. 나일론이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동아시아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지만, 우리나라는 미군물자에서 유출되는 제품이나 일본에서 밀수된 양말이 고작이었습니다.
여성 해방과 나일론은 무슨 관계?
코오롱그룹의 창업주인 故 이원만 선대회장은 당시 여성들이 세탁부터 바느질, 다듬이질까지 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는데요. 여성들을 가사 노동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도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장하는 나일론 시장을 내다보고, 나일론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대구에 한국나이롱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나일론 섬유 공업의 개척자인 코오롱그룹의 시작이었습니다.
눈치챈 분도 있겠지만, 사실 코오롱의 이름 속에 나일론이 숨어있습니다. 코오롱은 ‘KOREA’와 ‘NYLON’의 합성어로, 한국식 발음으로 한글화한 것입니다. 코오롱그룹은 섬유화학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시작은 나일론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름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는 것이죠.
공장을 처음 가동했을 때는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합니다. 한국나이롱주식회사는 원사를 가공한 양질의 스트레치 나일론을 목표로 했지만, 매끄러워야 하는 나일론 가닥이 자꾸 기계 사이에 엉켜 붙어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일론처럼 절대 끊어지지 않는 끈질김으로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창립한 지 2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정품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나이롱주식회사는 승승장구! ‘명주실보다 고운 나일론’이라 광고하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일론이 보편화되면서 품귀 현상까지 빚어졌고, 1963년에는 국내 기업 최초로 해외에 수출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합성섬유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코오롱이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나일론 원사 첫 수출 기념사진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질긴 섬유 나일론은 이후 양말부터 셔츠, 블라우스, 한복 감으로 삽시간에 보급되었고, 섬유뿐 아니라 산업용 용도로 개발되어 플라스틱 장난감에서부터 포장재,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활 속 구석구석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나일론의 출현은 다른 고분자의 연구개발에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요. 이처럼 20세기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나일론을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생산한 것이 코오롱이었다는 사실! 놀랍지 않으셨나요? 한 해의 시작인 1월인만큼 코오롱의 태동을 알린 나일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여러분도 2017년 처음의 열정을 잊지 않는 새해가 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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