뽁뽁이는 원래 ‘3D벽지’로 발명됐다?
꾹 눌러 터뜨릴 때 손가락으로 전달되는 묘한 쾌감과 전율. 사진만 봐도 저 오동통한 공기방울을 ‘딱딱’ 터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뽁뽁이를 터뜨리면 해물찜 먹을 때 입 안에서 톡 터지는 미더덕의 감촉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 뽁뽁이의 광팬입니다. 특히 공기방울 여러 개를 한꺼번에 ‘다다닥’ 하고 터뜨릴 때 느껴지는 기분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짜릿하죠.
스트레스를 받거나 지칠 때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힐링 장난감’ 뽁뽁이. 장난감으로선 부차적인 즐거움을 줄 뿐이고, 사실 일상 생활에서 유리, 사기 등 깨지기 쉬운 물품이나 표면 손상이 우려되는 귀중품을 운반할 때 없어서는 안 될 포장재입니다. 그런데 뽁뽁이는 원래 포장재가 아닌 벽지로 발명됐다는 사실, 알고 있으셨나요?
두 번 망한 뽁뽁이
뽁뽁이가 발명된 것은 1957년입니다. 미국 엔지니어 알프레드 필딩과 스위스 발명가 마크 샤반이 함께 아이디어를 낸 공동작품이었는데요. 두 사람은 처음엔 입체적인 디자인을 강조한 ‘3D 벽지’로 뽁뽁이를 만들었습니다. 플라스틱 재질의 반투명 샤워 커튼 두 개를 맞대어 붙이고 그 사이에 공기를 주입한 뒤 종이를 덧대어 지금의 뽁뽁이와 얼추 비슷한 형태의 벽지가 탄생됐습니다.
당시 미국에선 ‘비트 세대(Beat Generation: 기성세대의 질서를 거부하고 자유를 주창하며 파격적인 것을 선호하던 1950~1960년대 초 청년 세대)’ 열풍이 한창이었는데요. 그 영향으로 벽지 시장에서도 대나무 등 기상천외한 소재가 유행했다고 합니다. 이들 두 사람도 ‘벽지는 평평하다’는 상식에 반항하고자 공기방울이 툭 불거진 ‘3D 벽지’를 개발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망했습니다. 흉측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파격을 추구하는 비트 세대들에게조차 너무 앞서 나간 디자인이었던 모양입니다. 집안의 벽과 천장을 전부 뽁뽁이로 붙여 놓은 모습을 상상해보면 왜 망했는지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애써 개발한 ‘3D 벽지’를 그냥 버릴 수 없었습니다. 뭔가 다른 용도로 판매할 수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비닐하우스 소재로 다시 시장에 내놓습니다. 뽁뽁이의 단열 효과와 빛이 투과된다는 점을 내세워 농민들에게 어필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또 망했습니다. 단열 효과는 우수했지만, 당시 고객들에겐 기존 비닐하우스 소재에 비해 대단하다고 여길만한 이점이 없었던 듯합니다. 뽁뽁이는 그렇게 사라질 운명에 처했습니다.
포장재 상품화 반전으로 대박
그런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두 번의 쓰라린 실패를 맛본 샤반은 어느 날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하강하는 기체(機體)를 창 밖에 보이는 구름이 안전하게 받쳐주는 것 같다는 감상에 젖어 드는데요. 엉뚱하게도 그 감상에서 뽁뽁이의 대박을 예고하는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얼마나 뽁뽁이에 집착했으면…) 자신들의 실패작으로 깨지기 쉬운 물건의 겉면을 감싸면 떨어뜨려도 보호될 것이란 생각을 떠올린 것입니다.
샤반은 필딩과 상의해 벽지와 단열재로 팔려던 뽁뽁이의 형태를 포장재가 될 수 있도록 다듬었습니다. 이 무렵 두 사람은 ‘실드에어(Sealed Air)’라는 회사를 차렸는데요. 회사 마케팅 담당자인 프레드릭 보워스가 실패작이었던 뽁뽁이를 1960년 ‘버블랩(Bubble Wrap)’이란 브랜드의 포장재로 바꾸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합니다.
때마침 미국에선 1959년 IBM이 1401 컴퓨터를 선보였는데요. 이 기종은 내장 프로그램과 코어 메모리를 갖춘 첫 대형 트랜지스터 메인프레임 컴퓨터로 개발돼, 1만대 판매를 세계 최초로 기록한 컴퓨터가 됐습니다. 1401의 선풍적인 인기 속에 실드에어의 보워스는 값비싼 컴퓨터가 운반 시 파손 위험이 높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버블랩, 즉 뽁뽁이를 1401의 포장재로 활용할 것을 IBM 측에 제안합니다.
▲ IBM1401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보워스는 IBM을 직접 찾아가 깨지기 쉬운 물건을 뽁뽁이로 포장한 뒤 바닥에 떨어뜨리며 안전성 시연까지 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만큼 확실하게 신뢰를 주는 것도 없죠. 뽁뽁이에 반한 IBM은 1401 이외의 다른 기기 제품 포장에도 이 포장재를 활용합니다.
곧바로 대박을 터뜨리진 못했습니다. 당시엔 신문지가 포장재로 널리 활용됐기 때문인데요. 뽁뽁이는 돈 주고 사야 하는 반면, 신문지는 무료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운송수단의 발달로 장거리 대량 화물 수송이 빈번해지면서 신문이 대신할 수 없는 뽁뽁이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습니다. ‘준비된 자에겐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죠? 준비된 기업에겐 돈이 찾아왔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 전 세계 각국에서 주문이 쇄도하며 실드에어는 돈방석에 앉게 됩니다.
실드에어는 이 대박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꾸준한 연구개발로 소재나 공기방울 제작 방식을 바꾸면서 뽁뽁이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덕분에 실드에어의 뽁뽁이 원특허는 1985년까지 유지될 수 있었죠. 또 원천기술을 활용해 친환경 포장재 등 다른 혁신 상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야말로 진화와 변신에 성공한 것입니다.
살다 보면, 그리고 일을 하다 보면 실패할 때가 있죠. 실패에 좌절과 비관만 하며 더 나락으로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인을 분석하고 돌파구를 모색해서 더 큰 성공의 자양분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필딩과 샤반에게 뽁뽁이에 대한 스토커 같은 집착이 없었다면 두 사람의 성공 또한 없었을 것이며, 아직도 우리는 깨지기 쉬운 물건을 포장할 때마다 노심초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안 팔리네’, ‘못 쓰겠네’ 하면서 자포자기하는 대신 끈질기게 활용 방법을 찾고 마케팅 전략을 세운다면, 실패작도 대박 상품이 되는 반전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포장 기술의 혁신을 이뤄내며 우리 라이프 스타일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준 뽁뽁이처럼요. ^^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 겨울 추위가 극심해지면서 뽁뽁이는 창문 틈 등을 막는 단열재로도 각광받고 있는데요. 발명 초기 실패로 끝났던 두 번째 용도가 반 세기 만에 재조명되는 것입니다. 필딩과 샤반이 이 사실을 안다면 매우 기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코너 ‘남서방네 잡화점’은 雜貨店이 아닌 雜話店입니다.
일상 속의 혁신을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여러분과 가볍게 나누고자 합니다.
본 칼럼의 내용은 코오롱 그룹의 공식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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