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 닫힌 기억과 마음을 꽃으로 피우다

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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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기억과 마음을 꽃으로 피우다

꽃으로 봉사하는 원예치료사
전명주 씨

 

 

 

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기분을 변화시키고 정서를 안정시킨다.

기억을 되돌리기도 한다.

 

경남 사천에 사는 전명주(43) 씨는

바로 그 꽃으로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원예치료사다.

 

2019년 동네 노인복지시설에서
봉사를 시작해, 요즘은
청소년들을 위해서도 그 일을 하고 있다.

나눔의 꽃으로 삶의 꽃길을 열어간다.

 

 




기억은 꽃을 타고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했던 저는

이십 대 초반 웨딩 플라워숍에서

플로리스트 생활을 시작했어요.

 

경력이 단절된 건 결혼 후

두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아 기르면서예요.

 

가족들만 바라보며 살던 어느 날

저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는 걸

문득 깨달았어요.”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생각났다.

원예였다.

 

 

 

 

본인의 어머니와 같은 처지의

어르신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경상남도농업기술원에서 마련하는

원예치료대학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의

복지원예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집 근처 노인복지시설인

사랑원 노인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어

원예치료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봉사프로그램 계획서도 제출하고요.

2019년 가을의 일이에요.”


그때부터 경증 치매를 앓는

어르신이나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다.

 

재료비의 상당 부분을 자비로 충당했다.

하지만 늘 그 이상의 대가가 돌아왔다.

 

 

 

 

표정 없던 어르신들이 꽃을 만지며

아이처럼 웃으실 때,

욕설을 내뱉으며 화를 내던 어르신이

‘늙은 나에게 이런 수업을 받게 해줘서

고맙다’라며 해님처럼 미소 지으실 때,

편마비가 온 어르신이 느리지만

끝끝내 자기만의 원예 소품을 완성하실 때….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기쁨을

그는 가슴 벅차게 느껴왔다.

 

“까맣게 지워졌던 치매 어르신들의

기억이 꽃을 타고 돌아올 때가 많아요.

 

인지나 감각을 자극하기 위해

어르신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 만한

재료들을 수업에 자주 활용하거든요.

 

가장 크게 변한 건 저예요.

어르신들 덕분에 저 자신이

주인공인 삶을 비로소 찾았으니까요.”

 

 

 

 


고립에서 자립으로,
배움을 나눔으로

 

 

원예 봉사뿐만 아니다.

지난해부터 그는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초·중학생을 위한 ‘꿈길’ 진로 체험 교육

재능기부자로 활동 중이다.

 

그는 사천시 사남면의 옛집을 구매해

2021년부터 ‘힐링정원’ 마을학교를

운영하며 마을교사로서 학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원예치료 수업을 진행하고,

 

올해부터는

‘지역에 대한, 지역의 마을배움터’를

주제로 두 명의 마을교사와 함께

‘힐링정원 마을배움터’를 운영하고 있다.

 

올 초부터는 사천시청소년수련관

봉사자로서, 그리고 1388청소년지원단과
YWCA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과 같은

단체에도 소속되어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새로 벌인 일들이 많아지면서,

사랑원 노인지원센터에

매주 방문하던 것은 잠시 멈춘 상태인 그지만

하지만 언제든 돌아갈 생각이다.

 

꽃으로 기억을 피우는 길이

자기만의 꽃길이라는 걸

가슴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배움을 나눔으로 쓰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비로소 알게 됐다.

 

시간을 더 쪼개야 하는데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환해진다.

어르신들이 그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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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코오롱그룹 사외보 <살맛나는 세상>

vol.143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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