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익힌 기술로 타인의 삶을 복구하다

2020.12.10
공유하기

오래 익힌 기술로 타인의 삶을 복구하다

30년간 집수리 봉사해온 정동운 씨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 지기입니다.


망연자실(茫然自失). 

여러분은 이 말의 뜻을 알고 있습니까?


정동운(60) 씨는 ‘망연자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압니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넋을 잃은 얼굴들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재해 지역을 찾아가 

집수리 봉사를 처음 한 것은 

1990년 즈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알 만한

거의 모든 재난 현장에는 

정동운 씨가 있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한 누군가에게 

손전등 하나 내밀어 주는 일


누군가 막막한 상황에 처하면 

그의 가슴도 이내 먹먹해집니다. 

타고난 건 아닙니다. 


젊은 날엔 그도 자기 앞만 바라보느라 

옆을 살펴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주위를 돌아보게 된 건 

80년대 중반 지인 부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한 뒤였습니다. 


지인 부부의 초등학생 두 아이만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져 정동운씨는

둘이 살기에 적합한 집을 마련해 주고, 

그들을 보살펴줄 교회 목사를 연결해 줬습니다. 


눈앞이 캄캄한 누군가에게 

손전등 하나 내밀어 주는 일. 

앞으로도 그 일을 하며 

살아가자 마음먹었습니다.



재난 현장 어디라도 생업 접고 그 즉시


“그로부터 몇 년 뒤인 1990년경의 일이에요.

TV 뉴스에 태풍으로 수해를 입은 

어느 마을 소식이 나왔어요. 

그때가 추석 무렵이었거든요.

크게 상심한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내가 조금 수고하면 저분들의 아픔이 

조금 가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수리에 필요한 자재며 부품을 마련해 

바로 그 마을에 내려갔죠.”


일주일쯤 그곳에 머물면서, 

형편없이 망가진 문짝이며 

지붕이며 보일러를 손봤습니다. 


가을이었으니 목수로선 성수기일 때였습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보다 남을 돕는 일이

더 기쁘다는 걸 일주일 동안 알게 됐습니다. 


이후 큰 재난이 닥쳐오면 그는 

즉시 생업을 접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재난 현장 


2002년 태풍 루사 땐 강원도 속초와 

양양에서 보름 동안, 

2003년 태풍 매미 땐 경남 고성군에서 

20일간 집수리 봉사를 했습니다. 


루사 땐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긴, 

매미 땐 배들이 지붕 위로 날아간 

참담함을 지켜봤습니다. 


“봉사를 거듭하면서 나름의 원칙이 생겼어요. 

기왕이면 오지 마을부터 가요. 

그중에서도 장애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홀몸어르신이 많은 동네에 먼저 가죠. 

어려운 형편임에도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분이 계시면 

그 집을 가장 먼저 수리해드려요. 

같은 재난 상황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이 훨씬 크기 때문이에요.”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봉사


지난 몇 년간은 경북지역에 재난이 잦았습니다. 


2016년과 2017년엔 각각 경주와 포항에서

엄청난 지진 피해를 입었고, 

2018년엔 영덕에서 태풍 콩레이로 인해 

피해를 크게 입었습니다. 


어김없이 달려가 변함없이 

집수리 봉사를 했습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혼자가 아닌 ‘함께’였다는 것.


늘 홀로 재난현장을 찾았던 그는

어느 날 동료 목수들과 힘을 

합하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2014년 전국 인테리어 

목수연합회를 설립했습니다.


협회를 설립한 뒤로 취약계층 

집 수리를 함께하고 있어요.

행정복지센터나 지인의 추천을 받아서요.

작년부터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봉사를 해요.

전국에서 물난리를 겪은 이번 달엔

어느 때보다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나눌수록 커지는 봉사의 마법


2019년 9월엔 전국 인테리어 목수연합회 

회원들과 함께 전국 인테리어 목수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 

국토교통부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았습니다. 


기업을 비롯한 여러 단체와 협약을 맺고, 

더 크고 더 넓게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회원이 1,300여 명에 이르는 이 협동조합에서 

그는 수석상임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나눔의 힘이 커지는 걸 피부로 느끼면서, 

더 일찍 함께할 걸 그랬다고 이따금 생각합니다.


“지난 2월 인천 남동구자원봉사센터와 

협약을 맺고, 지난 5월 남동구의 

한 아파트 경로당을 리모델링했어요.

어르신들이 낮 시간을 함께 보내시는 곳인데,

경로당이 지하라 물도 줄줄 새고 

곰팡이도 엄청 피었더라고요. 

50여 명 회원이 8일 동안 그 공간을 

전혀 새로운 곳으로 만들어드렸어요.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몰라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봉사 중독자


어린 날부터 목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십대에 이미 그 꿈을 이뤘습니다. 


홀로 상경해 구두닦이를 하던 중 

운 좋게 전통 한옥 목수와 

인연이 닿았던 것입니다. 


그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전통 한옥 짓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후 고가구 공장이며 문짝 짜는 집, 

보일러 놓는 집 등에 

옮겨 다니며 기술을 익혔습니다. 


“평생을 했는데도 목수만큼 좋은 직업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진 기술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해요.”


자기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는 

재난 현장에서 쪽잠을 자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해도 집에 가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무너졌던 삶터가 조금씩 복구되는 게 

너무 벅차고 보람되 봉사에 중독된 사람,

바로 정동운씨입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