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인터뷰]오늘의 봉사로 오늘의 감사를 갚다

2020.03.13
공유하기


오늘의 봉사로 오늘의 감사를 갚다

간암 극복하고 봉사에 매진하는 박태호 씨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 지기입니다.


박태호 씨에겐 매일이 선물 같다고 합니다. 간암 선고를 받고 하늘이 무너졌던 그가 간 이식수술로 새 생명을 얻은 것은 2005년의 일. 이후 3년간의 격리치료를 마친 그는 가장 먼저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어르신 장수사진과 지역 행사사진 촬영, 어르신 발 마사지, 복지관 배식 등 일상을 나눔으로 채워가는 중입니다. 새 인생이 열린 지 15년이 지났는데도, 또 하루가 주어졌음을 날마다 고맙게 생각하는 그입니다. 감사를 갚기 위해 봉사 중인 박태호 씨를 만났습니다. 







카메라에 담는 누군가의 좋은 날 


그는 주로 좋은 일을 하거나 좋은 날을 맞은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좋은 모습을 늘 보며 사니, 그의 삶에 좋은 기운이 가득합니다. 오늘은 과천 우산살리기봉사단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우산 고치는 법을 가르치는 날입니다. 교육봉사 모습을 찍어주는 것이 그가 맡은 오늘의 임무. 남의 봉사를 기록하는 그의 봉사가 한 편의 액자소설처럼 아름답습니다. 


과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에 52개의 봉사단체가 소속되어 있어요. 레인보우사진동호회도 그 중 하나고요. 단체마다 행사가 참 많아요. 촬영을 부탁해오면 언제든 신나게 달려갑니다.”


레인보우사진동호회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오래 활동 해온 그가 지역 내 작가들과 함께 만든 사진봉사단입니다. 동시에 여러 곳을 달려가야 하는 날이 많지만, 나눌 수 있는 재능이 있다는 게 그는 참 행복합니다. 행사사진 촬영이 회원들과 함께하는 봉사라면, 장수사진 촬영은 10년째 홀로 해온 봉사입니다. 새봄이 오면 그는 지역의 경로당을 돌며 한 분 한 분의 ‘봄날’을 카메라에 담아 자비로 사진액자를 제작해 선물합니다. 장수를 기원하며, 가장 젊은 오늘을 기념해드리는 것입니다.







좋은 순간, 좋은 사람, 좋은 기억


어르신들의 봄날을 찍어드리는 그는 지금이 자신의 봄날이라 생각합니다. 불행의 숲에서 행복의 꽃을 피운 까닭입니다. 때는 하필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이었습니다. 축구장에 운집한 수만 명의 관중을 촬영하다 간 혼수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간암 판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셨기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6개월에 한 번씩 간암 색전술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이대로 생을 포기해야 하나 싶던 2005년 사돈(며느리의 오빠)이 간을 이식해줬습니다. 은인 덕에 새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수술을 받고 가족에게 매일 편지를 썼어요. 전국 각지를 돌며 촬영하느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게 그렇게 미안한 거예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은 편지를 일기처럼 써나갔죠. 이후에도 많은 반성을 했어요. 이식수술을 하면 감염 우려 때문에 약 3년간 격리생활을 해야 하거든요. 가족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베풀며 살지 못했더라고요. 다시 사회로 돌아가면 나누며 살아야지, 공짜로 얻은 제2의 삶을 봉사로 채워야지, 굳게 마음먹었어요.”







고난으로 비로소 알게 된 것들 


다시 세상으로 나온 2008년, 한국사진작가협회 과천시지부 동료들을 주축으로 레인보우사진동호회를 만들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2011년엔 어르신들 장수사진 촬영을, 2012년엔 과천시장애인복지관에서 배식봉사를 시작했습니다. 2016년엔 과천호스피스회에서 3개월간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고, 환자들의 제주 여행에 동참해 스냅사진과 장수사진을 찍어드린 것이 큰 보람으로 남아있습니다.


 

“같은 병원 간이식 환우들과 모임을 만들어 10년간 수술예비자들 상담을 해줬어요. 우릴 보며 희망을 얻으라고요.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준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때 깨달았죠. 건재상과 카센터를 운영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는데도, 그땐 지금처럼 행복하지 않았어요. 손에 ‘쥐고’ 사느라 남에게 ‘주고’ 사는 즐거움을 몰랐던 거예요. 물질로 얻는 기쁨보다 봉사로 얻는 희열이 몇 배 더 커요. 암 투병이라는 고난이 없었다면, 이 행복을 끝내 알지 못했을 거예요.”







남은 생도 봉사와 함께 


설 연휴가 끝난 뒤인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 그는 과천시민회관 전시실에서 〈풍경 따라 발길 따라〉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수익금 전액은 과천시장애인복지관에 기부합니다. 간 이식수술을 받으면 간장애 5급 판정을 받는데요.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장애인을 위한 일에 작지만 큰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주어진 하루하루가 매일매일 새롭게 감사해요. 그 감사를 갚기 위해서라도 남은 생을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모서리가 닳아버린 카메라를 들고, 그가 다음 봉사를 위해 일어섭니다. 걸어가는 그의 등에 성큼 새봄이 다가와 있습니다.






※ 해당 기사는 코오롱 사외보 〈살맛나는 세상〉 vol.123호를 재가공한 내용입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