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 인연을 배달하는 집배원

201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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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나는 세상] 인연을 배달하는 집배원

불편한 손으로 15년간 봉사활동을 이어온 윤여병 집배원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 지기입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는 타인, 즉 인간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어야 성립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집배원 25, 봉사활동 15년 경력의 윤여병(51) 씨는 자신의 주변 상황과 그 속에 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데요. 그래서 그는 동네 곳곳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로, 집배원은 그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직업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봉사는 집배원이라는 직업을 만나 더욱 빛나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인연을 배달하는 집배원 윤여병 씨를 만나보겠습니다.





꾸준한 봉사활동의 원천은 사람에 대한 관심

윤여병 씨는 다른 집배원들보다 한 시간 이상 일찍 출근합니다. 그의 출근 시간은 보통 6시 30분에서 7시 사이. 불편한 손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좀 더 일찍 출근해 작업을 미리 해놓지 않으면 일과를 다 마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오른손은 남들과 조금 다른데요. 손가락 세 개를 잃어버린 삶은 생각보다 혹독하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손가락을 잃었을 때, 삶에 대한 의지 역시 잃어버렸던 그가 우연한 계기로 집배원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 벌써 25년 전의 일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실습생으로 구로공단에 취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죠. 일한 지 10개월 만의 일이었어요. 오랜 소송 끝에 600만 원이라는 보상금을 받긴 했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제 절망적인 마음을 위로할 순 없더라고요.”

손가락이 불편한 그를 채용해주는 곳을 찾기란 어려웠습니다. 신문배달부터 우유배달까지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 그러던 중 우연히 집배원 모집공고를 보게 되었고, 세상의 편견을 성실함과 끈기로 이겨낸 끝에 당당히 우체국의 정직원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각 가정에 일일이 우편물을 배달하며 오랜 시간 한동네를 담당하다 보면 각각의 형편이나 상황을 속속들이 알게 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냥 지나칠 법도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가 가진 본성인 ‘측은지심’ 때문이었습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를 자연스럽게 봉사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업무가 곧 봉사이자, 봉사가 곧 생활

그는 뜻이 맞는 여러 집배원이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 더욱더 좋겠다는 생각에 ‘빨간 우체통’이라는 집배원 봉사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창단된 지 15년째, 14명의 회원이 자비를 모아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습니다. 이 활동과 더불어 그는 개인적으로도 틈틈이 한부모 가정, 홀몸어르신 등 주변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데요. 그에게는 업무가 곧 봉사이고, 봉사가 곧 생활인 셈입니다. 

또, 그에게는 자랑할 만한 특기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나무로 명패며 이미지를 조각하는 것입니다. 그의 집 앞마당에는 나무판자와 나무 깎는 기계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방금 작업을 마친 듯 정갈하게 다듬어진 나무 명패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손재주가 좀 남달라요(하하). 그래서 남는 시간에 이렇게 명패를 조각해서 직장 동료들이나 제가 돌보고 있는 각 가정에 하나씩 선물하고 있어요. 제 또 다른 즐거움이에요.”





봉사의 원동력은 이웃들의 정다운 미소

모처럼의 휴일인데도 그는 도무지 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8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홀몸어르신 댁에 쌀과 라면을 전달하기로 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차로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에서는 익숙한 듯, 반가운 얼굴로 한 어르신이 그를 맞이합니다.

“그동안 참 말도 못 할 안타까운 일들도 있었어요. 배달 가는 동네에서 늘 같은 시간에 밖에 나와 있던 분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 거예요. 몸이 불편한 분이시라 며칠 동안 내내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자꾸 이상한 예감이 들어 집에 찾아가봤더니 글쎄 피가 낭자한 바닥에 쓰러져 계시더라고요.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쳤는데, 몸이 불편해서 도움도 요청하지 못한 채 며칠째 그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던 거죠. 119에 신고해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틀 만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러한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조금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자책감이 듭니다. 하지만 화재사고에 적절히 대처한 일이나, 집에서 고독사할 뻔했던 사람을 구한 일들은 그에게 다시 한번 사명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바람은 크지 않습니다. 그저 무탈하게 이러한 일상들이 계속되는 것. 이웃들의 정다운 미소는 앞으로 도 그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일 것입니다.



※ 해당 기사는 코오롱 사외보 〈살맛나는 세상〉 vol.117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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