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 손끝에서 퍼지는 치유와 위로의 선율

201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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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나는 세상] 손끝에서 퍼지는 치유와 위로의 선율

고양실버아코디언연주단을 만나다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 지기입니다.


점잖은 모자를 쓴 백발의 청년들이 작은 수레를 하나씩 끌고 경로당 안으로 들어섭니다. 파란 재킷 안으로 보이는 밝은 갈색의 실크 셔츠에 윤기가 감도는데요. 주름진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이들을 맞이하는 같은 연배의 관객들 얼굴에 기대가 꽃핍니다. 오늘은 고양실버아코디언연주단의 공연이 있는 날입니다. 주름진 손끝에서 치유와 위로의 선율을 연주하는 그들의 젊은 열정을 만나봅시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고양실버아코디언연주단의 구성원 대부분은 퇴직한 교수, 교장, 공무원 등입니다. 이들의 인연은 1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노후의 취미생활을 위해 아코디언 수업을 함께 듣게 된 것이 그 시작인데요.  





아코디언의 깊고도 풍부한 멜로디에 매료돼 늘 배움에 열망이 있었지만,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건사해야 했던 젊은 시절 그것은 그저 꿈일 뿐이었습니다. 퇴직 후, 비로소 아코디언을 통해 다시금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한 이들은 배움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나눔’의 매개로 활용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2006년 2월 한뫼누리예술단 아코디언연주단을 창립했다가, 2010년 4월 고양실버아코디언연주단으로 명칭을 변경해 새롭게 출발했지. 연주단이 창립된 지는 12년이 넘었지만, 2000년 일산노인종합복지관 동아리 활동까지 포함하면 비공식적으로 19년이 됐어. 매주 월요일엔 요양원, 수요일엔 경로당을 돌며 정기공연을 하고 있고, 가끔 병원이나 노인대학, 보건 교육장, 경로잔치 등에 초대되기도 해. 보통은 달에 여덟 번 정도인데, 많을 땐 열두 번까지 공연할 때도 있지. 횟수로 따지면 벌써 780회 가까이 돼가는 것 같아.”





단원들은 총 15명으로, 평균 연령은 79세입니다. 악보에 수록된 연주 가능한 노래만 해도 150여 곡. 매 공연마다 9~10곡을 연주할라치면 한 시간도 짧게 느껴집니다. 능숙한 연주 솜씨와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연주를 이어갑니다. 오히려 온몸으로 박자를 맞추며 흥을 돋웁니다.

아코디언은 한 대의 악기로 선율과 반주를 연주할 수 있으며, 다채로운 음색을 낼 수 있어 마치 1인 오케스트라를 연상케 하는 매력적인 악기입니다. 특히 트로트뿐만 아니라 팝, 재즈, 클래식 등 장르에 구애 없이 연주할 수 있어 다양한 음악을 함께 공유하기에 좋습니다. 오른손으로는 건반을 두드리고, 왼손으로는 바람통을 여닫으면서도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 사람들과 교류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따뜻한 선율로 이웃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며, 긍정의 에너지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악기인 셈인데요.





연주를 통해 ‘함께‘ 주고받는 삶의 에너지


테이블에 빙 둘러앉은 청중을 앞에 두고 단장인 공길남(84) 할아버지가 인사를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 열렬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이윽고 ’14번’ 악보, ‘목포의 눈물’이 7대의 아코디언을 통해 구성지게 울려 퍼집니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고, 또 누군가는 박수와 함께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며 저마다의 흥에 취합니다. 이를 즐기는 것은 비단 청중만

이 아닙니다. 연주하는 단원들 역시 흥겹기는 마찬가지. 손끝에 힘이 실리고 발끝으로는 까딱까딱 리듬을 타는데요. 


고양실버아코디언연주단의 단장이자, 무대 위의 진행자인 공길남 할아버지는 유쾌한 입담과 유려한 진행으로 청중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는데요. 그에게 있어 봉사는 노년의 인생을 지탱하는 큰 기둥이자, 세월을 잊게 만드는 무한 에너지원이기도 합니다.




오늘 공연의 유일한 여성 단원인 김봉의(75) 할머니는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연주를 즐깁니다. 간간이 음색에 변주를 주며 더욱 흥을 돋우는 것 역시 그녀의 몫. 아코디언은 그녀에게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함께 즐길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지. 예전에 한 경로당을 방문했는데 말이야. 100세가 넘으신 할머니가 ‘이 나이를 먹도록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은 처음’이라고 하신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어. 내 작은 능력으로 비타민 같은 건강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계속해서 연주를 이어나갈 거야.”

그들의 흥겨운 연주가 계속되기를 응원합니다. 


※ 해당 기사는 코오롱 사외보 〈살맛나는 세상〉 vol.116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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