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베테랑] 일상에 예술을 조각하는 전시기획자

[코오롱 베테랑] 일상에 예술을 조각하는 전시기획자

문화예술 나눔 공간 '스페이스K' 담당자 황인성 과장 인터뷰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지기입니다.

스페이스K는 2011년 설립된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 공간입니다. 깊이 있는 문화예술 지원과 지역민을 위한 문화예술 나눔을 목표로 운영되는 곳인데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코오롱 블로그를 종종 방문하신 분이라면 지난 포스트에서 다양한 스페이스K의 전시들을 감상하셨을 텐데요. 오늘은 스페이스K의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주)코오롱 CSR사무국의 황인성 과장을 만났습니다. 어릴 적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보며 조각가를 꿈꿨다는 그는 거대한 돌조각을 조심조심 끌질 하듯 세심하고 치밀하게 스페이스K를 다듬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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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키에 말쑥한 모습으로 등장한 그는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스페이스K 과천의 전시를 안내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여유로운 모습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어 간 황인성 과장. 알고 보니 예술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 유명한 '미대 오빠'였다고 합니다. '미대 오빠' 황인성 과장이 들려주는 전시기획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요? 

Q. 어떻게 스페이스K에서 일하게 되셨나요? 

A. 대학을 졸업하고 상업 갤러리에서 7년 간 일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미술을 전시하는 공간은 상업적이냐 아니냐로 갤러리와 아트센터(또는 미술관)로 구분됩니다. 갤러리는 상업적인 전시 공간이기 때문에 작가의 작품이 얼마나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상업성이 떨어지면 전시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죠. 실험적이고 난해한 작품들은 제외되기 일쑤고요. 저는 예술의 가치를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소개해 줄 수 있는 전시를 꿈꿨습니다. 스페이스K는 코오롱 그룹이 지역민들에게 예술과 문화를 공유하고,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만든 비영리 공간이기 때문에 훨씬 다채로운 전시를 기획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수락한 것은 이러한 점이 무엇보다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Q. 스페이스K가 문을 열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하셨는데요. 스페이스K 어떻게 발전해 왔나요?

A. 코오롱 그룹은 그간 지역사회 안에서 예술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1998년 과천에서 시작한 코오롱 분수문화마당이 대표적입니다. 이때는 매주 주말마다 음악회나 인형극 등의 공연 활동이 주를 이뤘는데, 시민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습니다. 이에 힘입어 공연뿐만 아니라 늘 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상설 전시관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코오롱타워의 공간을 활용해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전국 코오롱모터스 매장의 독립 공간에 전시관을 추가로 마련했습니다. 타사의 경우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자투리 공간에 배경처럼 전시가 진행되는 것에 비해 코오롱은 설계 단계부터 전시만을 위한 단독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또 카이스트에 팝업 공간을 만들어 카이스트 학생들과 문화예술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주로 키네틱 아트나 테크놀로지가 가미된 영상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현재 스페이스K는 과천과 대구, 두 곳의 전시장에서 전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년에 2만여 명의 관람객이 스페이스K를 찾습니다. 지금까지 30회에 가까운 전시회가 열렸고, 참여 작가 수도 대략 200여 명에 달합니다. 

Q. 스페이스K에는 어떤 전시들이 진행되나요?

A. 스페이스K에서 진행되는 전시 프로그램은 크게 주제기획전, 작가개인전, 해외교류전, 외부기관 협력전시 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진작가들에게 전시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데요. 5월까지 진행했던 '코쿤전'도 그 중 하나입니다. 벌써 6회째 진행하고 있지요. '코쿤'은 '누에고치'를 말하는데, 스페이스K에서의 전시가 많은 신진작가들에게 누에고치에서 나비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 해외작가 교류전이나 외부기관 협력전시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영국이나 중국의 신진작가들을 소개하거나 인도네시아의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전시도 열었습니다. 루이비통의 사회공헌 프로젝트 '아티잔스'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전통장인과 신진 창작가가 함께 워크샵을 진행하고 결과물을 전시해 옛 것을 받아 새로움을 창출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현대미술로 풀어낸 의미 있는 전시였습니다. 

Q. 스페이스K에서 주목받은 작가들을 소개해주세요. 

A. 저평가되었거나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신진작가들이 스페이스K의 전시를 계기로 주목을 받게 된 경우도 꽤 많습니다. 전현선 작가나 허수영 작가 등은 스페이스K 전시를 시작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들입니다. 또한 재조명 받은 제여란 작가의 경우도 인상적인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한때 한국에 젊은 작가 붐이 일면서 역으로 중견작가는 소외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중견작가인 제여란 작가는 스페이스K에서 '어디든, 어디도 아닌'을 뜻하는 <Usquam Nusquam展>으로 다시 한 번 평단과 관객들에게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제여란 작가의 전시는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가만의 독특한 느낌을 담아낸 추상 작품들로 구성되었는데요. 두터운 질감과 변화무쌍한 색으로 과감하면서 스펙터클한 회화관을 보여주었습니다. 

Q. 전시를 기획하면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찾는지 궁금합니다. 

A. 전시는 지금의 시대성을 잘 포착해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서 어떠한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항상 눈과 귀를 열고 지냅니다. 예술가들이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하는지도 유심히 관찰하면서 전시에 대한 영감을 얻습니다. 그렇기 대문에 전시를 많이 보고, 작가들을 많이 만나는 일이 중요합니다. 전시를 만드는 것 역시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소통과 공감 능력이 필요합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전시를 자주 보는 게 쉽지는 않지만, 한 달에 몇 번은 꼭 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편입니다. 

트렌드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난 전시를 찾아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술은 시간이 흐른 뒤에 재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고흐도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화가로 인정받고 있으니까요. 전시기획자에게는 미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큰 흐름을 읽어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Q. 예술가와 기획자는 결이 다른 직업처럼 보이는데요. 조각가의 삶을 꿈꾸다가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또 어떤 때 보람을 느끼나요?

A. 어릴 적에는 마냥 조각이 좋았고, 조각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갤러리에서 일하면서 작가만 예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을 창작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예술적 사회활동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죠.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전시기획 역시 창작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느꼈던 감성을 전시 기획에 반영하고, 관객들이 그 전시를 저마다의 감성으로 소비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낍니다. 전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일이 굉장히 즐겁습니다. 

Q. 전시기획자를 꿈꾸는 젊은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지금은 직접 발로 찾아다니지 않아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아주 많습니다. 국내와 해외의 예술 흐름, 정보를 관심 있게 지켜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현상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결국 예술이 이야기하는 것이 그런 것들이니까요. 

Q. 앞으로 기획하고 싶은 전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최근 젊은 건축가들의 건축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건축도 예술의 한 장르로 인식은 해왔지만, 순수예술과는 다르게 받아들였거든요.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감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굉장히 제도적인 현실과 맞닿아 있는 장르가 건축인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스페이스K에서 건축전을 열고 싶습니다. 현재는 공간의 제약이 따르지만 설치미술이나 영상에 관한 전시로 현대미술의 다양성도 소개하고 싶네요. 

Q. 신진작가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여서 홍보가 중요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고 있나요?

A.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다방면으로 스페이스K의 전시를 알리고 있습니다. 지역의 활성화된 커뮤니티도 활용하고요. 또, 예술을 잘 모르더라도 지속적으로 접촉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같이 제공합니다. 주로 지역의 어린아이들이 참여하는데, 자연스레 예술 활동에 관심을 갖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예술의 가치를 알리는 한편, 임직원이 참여할 수 있는 '오픈랩'이라는 예술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드로잉부터 가죽공예, 북바인딩에 이르기까지 예술을 장르별로 체험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예술 입문자가 알아두면 좋을 예술 감상법 Tip을 소개해주세요. 

A.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회화 전시로 예를 들겠습니다. 먼저 전반적인 전시장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명이나 작품의 색깔 등을 넓게 바라보세요. 그리고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무엇을 표현했는지,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시면 됩니다.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시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보다 스스로 느끼는 감각을 일깨우는 게 좋습니다.

내가 작품 안에서 무엇을 먼저 보고 느끼는가를 인식하는 것이 감상의 출발입니다. 작가의 의도를 굳이 알아채려 하기 보다 작품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확장시키는 것에 집중해 보세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어렵게 다가올 수 있지만, 전시회에서 다양한 작품을 접하다 보면 자신에게 흥미롭고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도 생길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황인성 과장의 조언대로 스페이스K_과천 전시장을 둘러보니 멀게만 느껴졌던 작품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예술을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만 걷어내도 예술은 훨씬 내 삶 속으로 바짝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가까운 전시장이나 스페이스K에서 예술의 재발견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