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불어올 땐, 이 책!
가을바람과 어울릴만한 도서 모음
가을바람은 참으로 묘한 바람입니다. 시원하다가도 추워지게 만들고, 사람을 한없이 들뜨게 만들었다가도 어느 순간 한없이 슬프게 만드니깐요. 무엇 하나 집중하기 힘든 계절이 가을이지만, 책 읽기 좋은 계절 역시 가을이라고 합니다. 가을바람처럼 묘한 매력을 담고 있는 책들을 골라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가을바람과 어울릴만한 책을 골라봤습니다.
1. ‘호퍼’의 그림을 사랑한 작가들의 단편집 : <빛 혹은 그림자>
호퍼는 삽화가가 아니었고 서사 화가도 아니었다. 그의 작품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다만, 그 그림들 속에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기다리는 이야기들이 들어 있음-강렬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방식으로-암시할 뿐이다. 호퍼는 캔버스 위에 펼쳐진 시간 속의 한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거기엔 분명히 과거가 있고 미래가 있지만,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_ 서문 중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이름은 몰라도 호퍼의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 불릴 만큼 많은 문화 콘텐츠에 인용되었고, 광고 등에서 패러디도 많이 되었으니까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였던 에드워드 호퍼, 많은 문학가들 역시 그를 사랑했는데요, 그래서 이 책 <빛 혹은 그림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빛 혹은 그림자>는 호퍼의 그림을 소설로 쓴 책입니다. 스티븐 킹, 조이스 캐럴 오츠, 마이클 코널리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호퍼의 그림을 한 점 골라 그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단편소설을 써 내려갑니다. 각자의 취향대로 스릴러가 되기도 하고, 환상문학이 되기도 하고, 미스터리가 되기도 하죠. 그렇게 다양한 작가, 다양한 장르의 글들이 호퍼의 그림이라는 구심점으로 모이게 되어 이 책이 만들어집니다.
총 17편의 소설과 17점의 호퍼의 그림이 담긴 <빛 혹은 그림자>.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 두 가지가 모두 담겨 있는 책입니다. 화려함 속 쓸쓸한 도시의 어느 카페에 앉아 읽으면 더더욱 좋을 것 같네요.
2. 세상에서 가장 느린 세계일주 :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
죽기 전에 내 발로 모든 대륙을 밟아보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언어를 내 귀로 직접 듣고 싶고 세계 곳곳의 태양 아래에서 내 피부를 그을려보고 싶다. 세계 일주는, 나를 위해 나의 집인 지구를 방문하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여행자들이 그렇듯 나도 평생을 단 하나의 삶으로 보내기보다 세상의 구석구석을 탐험해보고 싶다. _ 프롤로그 중에서
마흔 살의 가장, 아이도 있고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한 남자가 어느 날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립니다. 해야 하는 것들과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버린 거죠. 그는 참고 인내하는 대신 과감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걸어서 세계 여행을 떠나겠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그는 모두가 안정을 찾고 안착하는 마흔에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내가 걸어서 여행하는 이유>의 저자이자 세계 3대 문학 상인 공쿠르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문단에서 인정받는 소설가인 올리비에 블레이즈입니다. 그는 2010년부터 1년에 한 달씩 걸어서 여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헝가리까지 총 5개국 8개 도시를 걸으며 길 위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록해 이 책 한 권에 담았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지만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걸어서 세계 일 주. 그 과감한 도전과 길 위에서 만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어 읽는 동안만이라도 꿈 꿀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3. 당신의 연애에 마침표가 필요할 때 :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모임>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 때마다,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릴 때마다 사람은 도리 없이 어른이 된다. 시간이 흘러 들리지 않는 것의 바깥과 안을 모두 보게 되는 것. 사강은 이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_ 317쪽
‘실연당한 사람들의 조찬모임’이라는 간판을 내건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이 모임에는 말 그대로 ‘실연당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이 모임이 존재하는 이유는 차마 처리하지 못한 실연의 기념품을 교환하기 위해서이죠. 연인과 함께 맞춘 반지에서부터 추억이 담긴 물건들까지 그것들을 내놓고 대신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갑니다. 그로서 진정한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죠.
이 독특한 설정의 소설이 백영옥의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입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주변에서 보아오던 사람들 같기도 하고, 때론 나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그들이 겪는 에피소드 역시 너무나 일상적입니다.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일들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야기는 쉽게 몰입할 수 있으며 문장들은 하나하나 가슴에 콕콕 와서 박힙니다. 헤어짐이 없는 사랑은 없는 걸까, 내 사랑은 왜 이토록 힘든 걸까. 사랑에 관한 수많은 생각을 하게 하며 이별에 관한 이야기지만 사랑을 하고 싶게 만드는 책입니다.
4. 보는 것만으로 설레는 감각적인 아트북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Q : 실제로 우주에서 촬영하는 SF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죠? 그냥 농담이었나요?
A : 아뇨, 그럴 의향이 있습니다.
Q : 네, 이제 큰 질문이 남았군요. 감독님의 영화 세계에서 신이 존재하나요? 만약 존재한다면, 그 신은 위에서 지켜보고 있나요, 아니면 직접 간섭하나요?
A : [긴 침묵] 신이 간섭합니다.
-「웨스 앤더슨 : 세 번째 인터뷰」중에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감각적인 영상과 독특한 스토리 전개로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영화입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감독 웨스 앤더슨은 영화감독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든 창조 가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죠. 그런 그가 직접 참여하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아트북을 만들었습니다. 출간만으로도 큰 화제를 일으켰고, 소장 템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책에는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웨스 앤더슨이 어떻게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는지에서부터 그것을 세련되고 감각적인 화면으로 연출되게 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까지 어디에서도 밝히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가 담겨 있죠. 또 촬영 현장 곳곳을 담은 사진들, 영화에서 감명받은 아티스트들이 구현한 아기자기한 일러스트, 드로잉, 모형, 영화 카드 등 볼거리 역시 다양합니다. 영화 못지않게 흥미로운 책이죠.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며, 영화를 봤다면, 더욱이 그 영화를 사랑했다면 무조건 소장해야 하는 책입니다.
재미난 건 인터뷰로 만난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자신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 고민의 지점을 잘 알기에, 망설임의 이유를 잘 알기에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도 많았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의 답변을 읽고 있으면 망설이는 우리들에게 진심 어린 용기를 전해줍니다. 잃어버린 열정을, 잊고 있던 꿈을 꾸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리듬 (최지연)
《야밤산책》,《결혼은 아직도 연애 중》의 저자이자 5년 연속 책분야 네이버 파워블로그(nayana0725.blog.me)로 선정된 블로거이다.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단, 알라딘 서평단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CECI>, 언론재단, 코오롱 등에 책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으며, 예스24에 일과 직장생활을 주제로 한 <그래봤자, 월급쟁이> 를 연재하고 있다. 《책 읽어주는 책, 북멘토(공저)》,《잘나가는 회사는 왜 나를 선택했다(공저)》등을 썼다.
본 칼럼의 내용은 코오롱 그룹의 공식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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