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K] 작가의 시선으로 보는 전시 <천성명의 '부조리한 덩어리 展'>

201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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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와 개념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를 되돌아보다

천성명 개인전 '부조리한 덩어리展'





안녕하세요, 코오롱 블로그지기입니다.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는 과천을 비롯해 서울, 광주, 대구에서 전시, 공연, 이벤트 등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상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페이스K 언제나 재미있고 독특한 소재로 여러분의 상상력을 자극할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으니까요. 관심있는 분들은 스페이스K 홈페이지와 전시장에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오늘은 스페이스K_과천에서 2월 27일까지 진행하는 조각가 천성명의 개인전 '부조리한 덩어리展'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천성명 작가는 자신이 설정한 내러티브 속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인체 조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뭔가 온전치 못한 모습의 인물 표현으로 내면에 대한 탐구와 현대인의 단면을 들춰내기도 하는데요. 익명의 인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분절된 신체기관들을 ‘부조리한 덩어리’라 명명하고, 선전(宣傳)의 성격을 띤 기념비 형상으로 대상과 방식을 한층 구체화했습니다. 작가의 일관된 모티브 중 하나이기도 한 분절된 인체는 이번 신작에서 다리, 얼굴, 팔, 장기 등의 세분화된 신체 기관으로 해체되어 낯선 덩어리로 제시됩니다. 작가는 각 신체 기관들을 연결하는 몸통을 제거하여 이들을 일체화할 근거를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1. 전시를 재미있게 보기 위한 작가의 시선 엿보기

다음의 요소를 생각하고 보시면 작품이 더욱 생동감있게 다가올 것입니다.


1) 기념비

일반적으로 기념비의 형상은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지속되기를 원하는 무형적 의미를 구체적 형상을 통해 상징화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이 기념비인데요. 그것에 나타나는 상징성은 표면의 형상에 의해 무형의 가치나 의미로 표출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새로운 가치와 의미가 확산되고 변화하는 현실에서 기념비의 관념화 되어버린 지향성과 다변하는 현재와의 괴리가 발생하는데요. 작가는 이를 시각적으로 접근하여 부조리함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2) 배경의 생략

평면이 입체화되는 과정에서 배경이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형상의 외곽을 흐릿하게 표현하는 공기원근법은 평면(화면)상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재현하는데요. 배경을 삭제하는 것도 주변 공간과의 단절된 시각효과를 극대화하여 평면을 입체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기존의 배경이 사라지고 새로운 배경과 관계를 설정하게 되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둘의 관계를 통해 작가는 합일되지 못하는 부조리함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전시 공간을 배경으로 덩그러니 놓인 형상들은 그것이 가지고 있던 지향성을 잃은 채 낯선 덩어리로 전락해 버리게 되는 것이죠.


3) 최소한의 입체

작가는 이번 작품을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광고판처럼 익숙한 방식으로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광고판은 실물에 가까운 선명한 사진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반해, 작가는 작품에서 붓 자국이나 밑그림이 드러나는 수작업의 표현을 부각하고 페인팅이 가지는 고유한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평소 경험에서 얻는 방식의 익숙함과 일반 회화 작업이 가지는 작가의 노동에 대한 관념적 배경 사이의 괴리를 통해 낯설게 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2.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남다른 작가의 시선을 여러분은 느끼셨나요? 블로그지기는 작품 구석구석에 작가의 다양한 생각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작품을 살펴볼까요?


1) 전시장 전체에서 바라보기

아래의 사진은 전시장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기념비적 성향의 조각을 해체하는 것이 이번 부조리한 덩어리 작업의 시작입니다. 팔과 머리, 그리고 다리는 기념비에서 그 성격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이지만, 각기 다른 조각의 일부분으로 비례나 색깔이 상이해 서로 연결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전시장 어디에도 머리, 팔과 다리를 이어주는 몸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사라진 상황에 각 부분들이 흩어져 있고 전시장 구석에는 조립식 장난감처럼 표피 없는 장기들만 걸려있습니다. 작가는 이런 모순의 상황에서 그 지향성에 대한 부조리함을 이끌어 냈고, 개별 작품은 형상의 해체와 왜곡된 조합의 연계로 부조리한 덩어리가 되고 맙니다.

2) 횃불을 들고 있는 팔

전시 공간 중앙에 길이 10미터의 횃불을 들고 있는 팔은 목재 패널로 제작(전시용) 가벽 형태와 같은 구조로 설치됩니다. 마치 길 거리에서 마주하는 건설용 가벽처럼 전시장의 중앙부에 사선으로 설치되며, 더 이상 밝혀지지 않는 횃불은 인공조명탑의 빛으로 대체됩니다. 작가가 연출한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관람객은 크고 낯선 덩어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3) 달려가는 군상들의 다리

작가는 기념비에서 달려가는 군상들의 다리 부분만 절단해 그 형상의 절곡(折曲, 부러져서 굽어짐)으로 지향성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높이와 폭을 울타리와 유사한 크기로 제작해 우리에게 익숙한 울타리 형태와 군상의 다리 형상을 중첩하려 합니다. 이런 두 가지 중첩 효과는 보존과 보호, 몰려가는 사람의 지향, 정적임과 동적임의 상반된 의미의 충돌로 마치 언어의 반어법처럼 강한 시각적 표현이 됩니다.





4) 절규하는 머리

절규하는 머리는 3개의 의자 위에 설치되었습니다. 마치 다리 없는 테이블 상판같은 얼굴의 형상은 더 이상 쓸모없어진 절규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받침을 제거하여 의자에 깊이 잠겨들 듯 놓여졌습니다. 의자도 테이블도 사용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린 구성은 흡사 현재 속 기념비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5) 조립식 프레임 안의 장기

작가는 조립식 장난감 프레임 안 장기의 색을 분홍색 베이스에 인체의 피부색을 중첩시켜 표피와 장기의 이미지를 중첩하려 했습니다. 가장 안쪽의 장기와 바깥의 피부를 겹쳐 그 사이가 생략되고 사라지는 것을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6) ‘아무도눈치채지못한다’라는 문구

배경을 바탕으로 쓰이는 일반적인 문자와 다르게 작가는 글자를 서로 붙여 하나의 연결된 덩어리를 구성하고, 이를 벽에서 분리된 독립된 덩어리로 형상화 합니다. ‘아무도눈치채지못한다’라는 문구는 상대적으로 거대한 횃불을 들고 있는 손의 뒷벽에 설치되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손이 가지는 거대한 지향성에 대한 일종의 허무를 암시합니다. 누군가는 달려가고 소리치지만 그것을 알아듣거나 보려는 이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광의의 의미로 보면 표현과 소통 과정의 부조리함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7) 스피커의 음성

바닥에 놓인 스피커에서는 감정 없는 목소리가 하나부터 아홉까지를 반복합니다. 마치 진군을 알리는 북소리와 같지만 실은 작은 음량과 톤의, 높낮이가 없는 숫자는 이내 우리에게 익숙해지고 마침내 사라져버린 열정과 같이 반복되며 전시장의 바닥으로 향하게 됩니다.





8) 사자의 형상

사자의 형상은 보통 용맹함의 상징으로, 수호나 보호의 상징물로 많이 표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수호의 상징으로 석탑이나 건물 입구에 세워졌던 돌사자 상을 평면으로 그 형상만을 오려내고 몇 개의 붓질로 사자임을 암시 할 수 있게 표현했습니다. 면재로 재현된 사자의 형상은 종잇장처럼 얇아져 그 어디에서도 용맹함은 찾을 수 없고 표면은 마치 바람에 사라지듯 몇 개의 선들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로비 공간 한 쪽의 유리큐브 안에서 지나쳐가는 사람들의 곁에 보관됩니다.





작가 천성명은 조각의 전통적 요소를 과감히 뒤집고 관념화된 기념비의 상징을 교묘히 비틀어 공통의 가치나 도덕 기준이 없는 혼란스러운 사회 상태를 묘사했습니다. 결국 연속된 모순의 관계와 파편화된 덩어리들을 통해 그가 말하는 ‘부조리’는 규범이 불충분한 현실에서 또 다시 수많은 가치를 수용해야 하는 낯선 상황과 경험에 대한 괴리감을 뜻합니다. 


새로운 가치와 개념에 무분별하게 노출돼 수용을 강요당하는 우리,

넘쳐나는 가치와 개념의 홍수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실을

'부조리한 덩어리'에 비추어 스스로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Space k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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